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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May 14. 2024

서울 뱅크시 인사동

얼굴 없는 예술가의 작품을  만나러 갔다. 요란한 전시 홍보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저 아름다움과 추상 사이의 어딘가에 큰 편차 없이 전시된 그 무수한 갤러리들에 들어찬 그림 또는 그 작가의 세계와는 별종을 보려는 마음이 컸다. 영화와 책으로 접하고 몇 차례 내한 전시의 관람 기회를 놓친 터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자연도 사람도 많고 그리고 표현하고 싶은 세계도 많다. 또한 귀족이나 부자들의 거실에는 어울리지 않을 거친 그림, 때론 하수구를 기어 다니는 쥐들도 표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쥐 한 마리가 세상을 바꿔놓았다"는 월트 디즈니의 미키마우스처럼 뱅크시도 쥐로 또 뒷골목의 지저분한 세계로 재미를 보았다.  


얼굴 없는 예술가, 허가받지 않은 그라피티로 도시의 벽면을 더럽히는 골칫덩이, 반전의 메시지로 평화를 호소하는 박애주의자...... 뱅크시의 모습은 다양하다.   


우리의 의식 어딘가에는 잠자는 뱅크시가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화이트 큐브에 예쁘게 장식된 사각형만이 예술의 전부는 아니기에.


뱅크시를 보면 검은 피카소 장 미셀 바스키야가 오버렙된다.

그라피티가 닮았고 작가의 태동기 뉴욕과 영국이라는 활동배경은 다르다. 반항기 가득한 반문화와 저항의 하위문화는 닮았다. 성공의 빛은 짧았고 그늘진 사생활과 물중독 후유증에 따른 20대 요절, 얼굴 없는 화가로 큰 성공을 누리며 축적된 부를 세상에 제법 건강하게 활용하는 보이지 않는 셀럽이 된 것은 다르다.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무기들이 지하공간 여기저기에 눈에 띌 때 최근 손에 들었던 책의 한 부분이 문득 떠올랐다. 이스라엘의 젊은 석학은 비극의 중동 땅을 늘 응시하고 있어서인지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인류는 석기시대에 비해 수천 배 이상의 힘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수천 배만큼 행복해졌을까요? 우리는 힘을 얻는 데 뛰어난 소질이 있으나, 힘을 행복으로 전환할 줄 모릅니다. <사피엔스>에서 말하고 싶었던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 <초예측> 유발 하라리 외 지음, 정현옥 옮김


전시장을 나설 때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뱅크시에게 따라붙은 유명세와 성업성의 빛이 요란할수록  바스키야의 삶에 대한 애잔함은 커젔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봄날의 햇살이 분부신 오후 '그라운드 서울'에서 '그라운드 제로'의 비극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뱅크시도 답한다.


요즘 내 작품이 가져다주는 돈이 나를 좀 불편하게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죠. 징징댈 것 없이 그냥 모두 나눠주면 돼요. 내가 세상의 빈곤에 대한 예술을 만들면서 그 돈을 혼자 쓸 수는 없다고 봐요. 그건 내게도 너무 아이러니한 일이죠.

      - <뉴요커> 와의 인터뷰 중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반문화, 하위문화 계열의 작가가 부자가 된 것을 못마땅해 할 수도 있을 대중의 시선을 의식했을 것이다.


뱅크시는 왜 얼굴을 숨길까?  희끗해져 가는 머리와 주름이 노출되어 늙은 부자 화가로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뱅크시는 바스키야처럼 젊은 정신을 그대로 가진 채 결코 세상과 타협하거나 늙지 않는 작품을 만든다는 착각을 대중에게 교묘히 심어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Capuçon . Lugansky - Rachmaninoff Vocalise, for Cello and Piano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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