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시카 호쿠사이
미쳐야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의 실체는 예술가나 그 분야에 전설로 남은 사람들의 일화에서 찾을 수 있다.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활동한 일본의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는 "그림에 미친 사람"이라는 뜻의 '가쿄진'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이 화가에 관심을 가진 건 언젠가 여행을 갔을 때 작은 도자기 술잔에 이 화가의 그림이 있길래 누구의 그림일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자기 직업에 충실하고 미친 듯이 몰입하는 사람은 많지만 호쿠사이의 경우는 특별하다. 호쿠사이는 전통적인 일본 회화의 기법에 서양의 원근법을 접목한 화가로 이제 서양에서도 널리 인정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는 평면이면 재료를 불문하고 그림을 부단히 그렸다. 작은 쌀알에도 그리고 거대한 캔버스에도 그렸는데 그 대상 또한 풍경이나 인물,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언젠가 그의 작업실에서 불이 나 모든 작품이 소실되었을 때도 망연자실할 겨를도 없이 금방 작업에 다시 몰두했다. 손자가 도박에 빠져 가산을 전부 탕진하고 온 가족이 거리로 나앉게 되었을 때도 호쿠사이는 절에 들어가 그림을 그렸다.
말년에 그는 "나는 여섯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으나 65세 이전에 그린 그림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나는 73세에 동식물, 나무, 물고기와 곤충의 진정한 형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90세가 되면 사물의 비밀을 밝힐 것이다. 그리고 110세가 되면 모든 점과 선이 살아서 움직일 것이다."
호쿠사이는 89세에 작고했기에 원대한 뜻을 이루진 못했고 죽음이 임박했을 때 "하늘이 내게 10년, 아니 5년 만이라도 더 허락했다면 나는 진정한 화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가 남긴 그림은 30만 점이 넘는다. 한 시도 그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런 다작을 낳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주저하고 망설이기보다 꾸준히 자신의 세계를 성실히 걸어간 화가의 발자취는 결국 대가의 길이 되었다.
괴짜의 면모도 가지고 있었는데 아흔 번을 넘는 이사에 대한 이야기도 그의 일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심지어 하루에 세 번이나 이사한 일도 있다고 한다. 호쿠사이가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몰두해 방이 어지러워지면 이사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흔세 번째로 이사하면서 예전에 살던 집으로 옮겼을 때, 방이 이사 갈 때와 별 차이가 없이 어지러웠기 때문에 더 이상 이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호쿠사이는 70년 이상 작품에 몰입하며 책 표지의 일러스트와 목판화, 스케치에 까지 영역을 넓혀 작품을 양산했다. 서양과 일본의 교류가 활성화된 19세기 이래 서유럽 작가들에게도 호쿠사이의 작품이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서구 컬렉터에게 일본 미술품, 특히 우키요에의 수집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아가 인상주의 계열의 반 고흐나 클로드 모네와 오귀스트 르누아르, 나아가 독일의 아르누보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