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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Jul 18. 2024

 예술과 인간의 체온

살다 보면 거친 언어들이 영혼을 할퀴고 설익은 관계들이 가슴을 찢어놓을 때도 있다. 그래도 그 도도히 흐르는 선율이 있어서 무수히 위로받았다. 로맹 롤랑은 말한다. 


음악은 겉으로 죽은 것 같아도 삶은 연속한다는 것을, 세상이 폐허가 되더라도 영원히 새로 싹이 튼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예술은 변하고 상황에 적응한다. 전쟁이나 혁명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산산이 찢긴 민족의 경우, 그 창조력이 건축으로 나타나기는 힘들다는 것은 확실하다. 건축을 하려면 돈이 든다. 그리고 건축에는 새 건물이, 안녕이, 미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

삶은 스스로의 안으로 잦아들며 영원한 행복 갈구로 인해 다른 예술적 길을 찾게 된다. 아름다움도 변하고 좀 내적인 성격을 갖게 되며, 심오한 예술, 즉 시와 음악으로 피신하게 된다. 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위대한 음악가>,  로맹 롤랑 지음, 임희근 옮김,  P.18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시비를 가릴 수는 없다. 수백 년을 살아남은 바흐나 베토벤을 능가할 수 있는 

음악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일신앙처럼 자신의 기호를 강요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클래식 애호가의 케케묵은 취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미래에는 기계가 모차르트와 브람스의 머릿속을 다 헤집어 본 듯이 작곡한 곡이 이것 보란 듯이 깔끔하고 멋스러운 선율로 우리의 귀를 간지럽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유토피아로 여긴 디지털이 만개한 세상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까.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우리는 상대방의 체온과 음성, 허점 투성이의 모습을 그 얼마나 갈구했는가. 까만 눈동자만 반짝이고 마스크로 가린 얼굴들, 그마저도 모니터로 보면서 느낀 아쉬움은 아직 남아있다.

 

한치의 흠결 없고 이상적인 배우자나 친구는 없다. 허술하고 실수 투성이 같이 보여도 그것을 채우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기계의 도움 없이 살기는 조금 더 불편할 뿐이다. 그렇지만 실수 많은 인간의 온기가 사라진 세상은 살벌할 것이다.



Schubert - Arpeggione Sonata D 821 / Presentation + New Mastering (Ct. rec.: Rostropovich / Britten)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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