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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Aug 13. 2024

'창의성'이란 고도를 기다리며

창작 계통의 직업을 가진 이들이 벽에 부딪혀 자신의 한계를 떠올리는 경우를 본다.


오선지를 보기만 하면 악상이 주르르 흘러내리기라도 하듯 수 많은 명곡을 어린 나이에 작곡한 신동 모차르트의 경지, 사과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떨어지는 순간을 맞아도 아이작 뉴턴의 영감은 쉬이 오지 않을 수 있다. 광기에 휩싸여 압생트 보드카를 마시고 귀를 자른다고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보이지도 않을 것이고, 타히티 섬 같은 외딴섬으로 들어가 원시의 자연 앞에 캔버스를 펼친다고 고갱이 되는 것도 아니다.


청바지에 터틀넥 셔츠를 입는다고 해서 스티브 잡스의 영감이 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천재성이나 광기로만 이들의 창의성을 나온 것은 아니다. 창의성을 연구한 학자의 견해를 빌려본다. 


반 고흐의 경우 정신질환이 있었던 때보다 멀쩡한 정신일 때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으며 슈베르트 또한 그랬다. 뉴턴의 경우는 정신질환 증세를 보일 때 아무런 업적도 남기지 못했다. 예술가와 과학자를 대상으로 30여 년간 창의성을 탐구해 온 정신과의사 앨버트 로텐버그는 창의적인 이들의 사고와 광인의 사고의 표면적인 유사성은 존재하나 “창의성은 논리를 초월하는(translogical) 것이고, 정신질환자의 사고는 비논리적 (illogical)인 것”이라고 했다. 또한 로텐버그는 “창의적인 예술과 과학을 만드는 데는 동기, 오랜 기간의 훈련, 추진력,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 <창의적 사고와 삶>  이일하 외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p.36  


반 고흐나 프란츠 슈베르트같이 정신질환을 앓았던 예술가가 천재성을 발휘한 경우가 있다. 이런 사례를 들어 천재성과 광기의 연결성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현실과 다른 낭만적 상상의 소산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친숙한 천재 수학자 존 내시의 경우도 이런 움직임에 개연성을 더하는 것은 영화나 소설에서 극적인 장치로 광기를 예술을 위한 순교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로텐버그처럼 많은 실증적인 연구는 광기와 천재성의 연관성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는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한 걸음씩 때로는 뒷걸음질 치기도 하며 쌓아온 '축적의 시간'을 보낸 후 창의성이라는 '고도'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예술이 아닐까. 


Lili Boulanger Nocturne pour violon et piano (1911), Savitri Grier (violin), Richard Uttley (piano)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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