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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Aug 18. 2024

바이올린 줄이 끊어졌을 때

현악기 연주는 격렬하게 연주하는 곡일 경우 활의 힘를 못 이기고 줄이 연주 도중에 끊어지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오케스트라 연주나 합주의 경우는 메인 독주 부분을 연주하는 주자에게 다른 파트를 맡은 연주자가 자신의 바이올린을 빠르게 건네주어 연주를 이어가게 하는 경우도 있다. 여의치 않을 때는 끊어진 줄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세 종류의 줄로 음을 맞추어 연주를 마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들은 줄을 새것으로 미리미리 갈아서 끊어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운동 선수의 경우는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 실수하지 않는 것도 실력이라며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겨눌 수도 있다.


재즈와 흑인 영가 풍의 소울 음악이 유럽무대에서 어필하기 힘든 시기였다. 이끌고 있는 연주자의 기타 줄이 공연 도중 끊어진 수준의 사고가 아니었다. 악단이 파산했다. 생활비는 물론 미국으로 돌아갈 차비조차 없었다. 이제 막다른 골목에 섰고 단원들은 그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살을 생각할 즈음 궁즉통의 수는 자작곡의 라이선스를 헐값에 팔고 지인에게 사정해 돈을 빌리는 것이었다. 


겨우 겨우 마련한 비용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프랭크 시나트라를 비롯해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지인들의 반주로 상당한 궤도에 오르면서 그의 인생은 포장도로가 된다.  미국 대중음악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퀸시 존스의 삶이다. 자전적 에세이에서 그는 말한다.


음악, 그리고 예술 전반은 알 수 없는 짐승 같은 것이다. 볼 수 없고, 맛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며, 냄새를 맡을 수도 없지만, 그것을 느낄 수는 있다. 최종 결과물이 어떤지, 사람들이 그것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곡이 나의 소름을 돋게 하는지는 알 수 있다. 

    -  <삶과 창의성에 대하여> 퀸시 존스 지음, 류희성 옮김, p.140


퀸시 존스는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당부를 잊지 않는다. "일을 해내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제안을 수락하지 말라, 그리고 준비가 되어 있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라고. 


그가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면 당대 최고의 가수 시나트라가 무명의 연주자에게 편곡을 요청했을 때 수락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로 가서 작곡계의 대모 같은 존재인 나디아 블랑제를 사사하고 재즈에서 클래식까지 탄탄한 음악적 바탕을 쌓았기에 가능했다.  


분명한 것은 팽팽한 긴장잠을 잃고 자신의 자리에서 뭘 할지 모르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올림피언들이 4년 후를 보듯 우리도 겨우 4일이나 4달이 아닌 4년이나 그 이후의 결실을 준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차이는 10년 후면 현격할 것이다. 멀쩡하던 바이올린 줄도 예기치 않게 끊어질 수 있다. 비록 주어진 일과 일상에서 일시적으로 허덕거리더라도 칼 융이 던지는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한 성찰은 음미할 만하다. 


나의  존재 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 칼 융


Itzhak Perlman – Beethoven: Violin Concerto (with Daniel Barenboim, Berliner Philharmoniker)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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