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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Nov 10. 2024

감정의 피트니스, 예술

우리 뇌가 가진 유연하고 적응력있는 속성은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해도 추후에 유사한 경우가 발생하면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 수 있게 한다. 현실에서 작은 시련에 적응된 감정은 우리 정신의 면역력을 키울 것이다. 그렇다고 감정노동에 너무나 장시간 노출되어 견디기 힘들게 한다면 이 또한 자기 학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나 연극, 오페라 같은 예술작품을 통해 감정을 이입하고 극한의 슬픔도 이겨내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감정의 '피트니스'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과정은 현실에서도 감정을 다스리고 의연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이 헤비메탈 음악의 강력한 사운드를 즐긴다고 난폭해지지는 않을까 염려할 수도 있다. 오히려 감정의 대리폭발로 현실에서 면역제로 작용해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고 긍정하면 어떨까.


세익스피어의 비극이 막장이 아닌 것인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극단의 감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극한의 카타르시스로 연결하는 힘이 있어서일 것이다.


너무나 흔하게 온갖 매체에 난무하는 막장드라마의 스토리가 감동을 주기보다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진정성 없고 공허한 대사가 청소년들의 인성을 망가뜨리지는 않을까 걱정될 떄도 있다.


명품과 짝퉁의 문제도 경계가 그리 두텁지 않아 보일 떄도 있다. 자세히 보면 콘텐츠에도 그런 경계가 보일 수 있다. 그렇듯한 모양새만 추구하고 짧은 순간에 많은 관심을 끌려고 우리의 눈과 귀를 붙잡아두려하는가? 아니면 시대를 넘어 인간의 근원정서를 파고드는 힘을 지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의 충실성의 문제가 될 것이다.


짧은 콘텐츠와 말초적 재미에 적응된 뇌는 거대한 서사와 감동을 받아들이기 힘든 경지에 이르지는 않았을까.

종이책을 읽기 힘들어지고 배속으로 돌려서 영화를 감상하려는 시대는 감정의 호흡이 가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진득하게 자신의 중심을 잡을 힘을 가진다면 새로운 안목이 생길지도 모른다. 


육체에 대한 것처럼 감정의 피트니스 훈련을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지를 정하는 문제는 머리 큰 성인들에게 강제할 수 없는 일이다. 상업성이라는 하마는 언제나 그런 고민을 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크고 작은 먹잇감을 집어삼키려 자본이 시키는 거대한 트렌드로 게걸스럽게 입을 벌리기만 할 것이다.


다만 그런 고민을 하고 후속세대에게 올바른 인성을 만들어줄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일은  공동체의 건강성을 염려하는 사람에게는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다.   


  


[Playlist] 가을에는 브람스를 (낙엽과 함께 듣기 좋은 명곡 모음) Fallen Leaves with Brahms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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