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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에

by 호림

시간에 단위를 부여하고 구획을 나누어 쳇바퀴에서 탈출하려는 인류의 지혜가 새해가 시작하는 시점을 새로운 상품으로 포장하고 거창하게 축하하는 의식으로 만들었다. 그건 축제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서동욱 시인은 말한다.


삶은 너무도 소중하기에

이렇게 우리는 눈금을 긋고서

힘껏 도약하며

실망스러운 낡은 삶을 새해로,

갖고 싶은 신상으로 만든다.


한 챕터를 넘기며 책갈피를 꽂아두고 숨을 고르는 일시적인 정지의 시간, 올 연말에는 한국인들이 대참사 앞에서 가쁜 숨을 멈추고 숙연해졌다. 그렇지만 다음 챕터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다만 이 정지의 시간에 반성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지 못한다면 무의미하게 책장을 넘기고 도돌이표 같은 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백무산 시인은 이렇게 '정지의 힘'에 대해 얘기했다.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내 20대 감수성에 단비처럼 다가왔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직 노벨문학상을 못 받았다고 훌륭한 작가가 아닌 건 아니다. 세계인의 감성에 다정하게 다가가며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은 그도 올해 76세다. 하루키의 말을 되짚어보며 한 시기 내 할 일을 놓친 건 없는지 돌아본다.


누구나 나이는 먹는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떤 한 시기에 달성되어야 할 것이

달성되지 못한 채

그 시기가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 <먼 북소리> 중에서




(122) 33.라데츠키행진곡,바렌보임지휘.음악3,웃자9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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