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바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당시 은데산조라는 40대 사나이가 중국 선전에 있는 양꼬치 가게에서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었다.
이 사나이가 세계의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의 배다른 동생으로 마크 오바마 은데산조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그를 찾으러 왔다. 그러곤 수군거리며 이제 곧 그도 이 작은 가게를 접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의 형이 대단한 출세를 했으니 아마 그도 곧 미국으로 가서 한자리 차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은데산조는 태연하게 고기를 구우면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형이 대통령이 된 것이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내 일은 양꼬치를 굽는 것입니다. 나는 손님들을 위해 양꼬치를 굽는 것이 제일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만약 나중에 형이 중국을 방문하고 이 작은 가게를 찾는다면 기꺼이 형에게 양꼬치를 대접할 것입니다. 아마도 꽤 낭만적이면서 재미있는 장면이 되겠지요?
그 형에 그 동생이랄까. 형의 그릇에 버금갈 정도로 은데산조의 쿨한 면모가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 적이 있다. 스탠퍼드에서 석사를 마친 은데산조가 한자리를 원한다연 오바마 형이 적당히 한 자리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은데산조로서는 양꼬치 가게 주인보다 수입도 좋고 폼 나는 직장을 얻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은 엽관제 전통에 따라 대통령의 직간접 영향 하에 백안관에서 임명하는 자리가 수만 개에 달한다고 하니까.
은데산조와 함께 하버드 출신이라는 스펙이 빛나는 미셀 오바마도 버락 오바마 재임 시 별다른 구설에 오르지 않았다. 미셸은 오바마 취임 전 "저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오바마의 내조에 충실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굳건히 지켰다. 아마도 은데산조나 마셀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 지혜로운 사람인지도 모른다.
괴테도 한 때는 바이마르 공국에서 왕의 참모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가 싶었지만, 결국 인생의 대부분은 문학이라는 큰 울타리에서 헤엄치며 대문호가 되었다. 베토벤은 궁정악장 자리를 탐내거나 관객들의 입맛에 맞는 인기 있는 곡을 작곡하는 데에만 골몰하지 않았다. 한 번은 당시에 인기가 없던 그의 곡 하나를 두고 후배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베토벤은 태연하게 말한다. "이보게 이 곡은 후세대를 위한 곡이라네" 라며 느긋하게 대답하며 자신의 길을 갔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굳건한 직업의식으로 온갖 잡음에 굴하지 않고 초연하게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해내며 행복을 느끼는 이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은데산조처럼. 이탈리아 칸쵸네 '일 몬도'의 가사를 음미해 본다. 세상은 그래도 돌아가고 우리가 자신의 일에 행복을 느끼며 사랑을 하는 일상은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