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과 만나면 대화의 내용이 거칠고 앙상해진다. 그것은 교양이 부족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내뿜는다고 그 사람이 교양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온갖 잡지식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고 저절로 교양인의 향기가 풍겨지지도 않는다. 교양에 대해 장석주 시인은 말한다.
교양은 도덕과 품성, 타인을 포용하는 능력,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매너를 아우르고, 더 나아가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능력, 예술에 대한 조예, 삶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당신 곁에 있는 누군가가 늘 겸손과 너그러움, 갈등을 푸는 해법의 의젓함을 매너로 보여주는 사람이라면 그는 교양인임이 분명하다.
- 한국경제신문 1/8 자 칼럼
사람마다 고유한 결이 있다.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의 무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소 투박하고 거친 결을 가지고 있어도 속은 한 없이 부드러운 사람도 있고, 깔끔한 매너 속에 터프한 야성이 웅크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우리는 그 사람과 있을 때 서로 배우고 편안함을 느낄 때 상호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남녀를 초월한 인간관계의 문제다.
시간을 같이 보낸 후에 뒤돌아볼 때 상대방에게 허무하지 않게 하려면 평소 자신의 교양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을 소홀히 하면 다른 이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잠식하거나 심지어는 해악을 끼칠 수가 있다. 이런 지경이라면 대개 그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오래된 윤활유는 교양이다. 어떤 면에서 실용이 지배하는 팍팍한 세상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딪히는 것도 각자가 우직하게 쌓아 올린 교양의 빈곤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지천으로 인터넷 세상을 떠도는 짧은 영상 꾸러미들과 인스턴트 지식 몇 스푼으로 교양은 금세 뚝딱 쌓이지 않는다. 깊은 사색과 독서, 향기로운 만남들 속에서 켜켜이 쌓인 교양은 나무의 나이테가 생기듯 세월의 풍화를 견딘 경우가 많다.
AI가 인간에 가까워지는 세상에 한가한 교양 타령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인성의 근본은 교양이다. 최첨단 지식의 부족을 탓하기보다 교양의 부족이나 실종을 걱정하는 것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학교와 사회는 건강한 교양인 대신 인성의 바탕이 취약한 앙상하고 전투적인 사람들을 양산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