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교황>은 교회의 정점에 선 황제들에게 느끼는 인간적인 연민과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콘클라베>는 그 교황을 선출하는 데 있어서 종교계의 수장들이 펼치는 의사결정 과정을 둘러싼 아귀다툼과 내부 정치를 개연성 있는 픽션으로 그린다. 성속을 넘나드는 대사들과 함께 그 갈등구조가 인간사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민주주의의 위대한 수단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다수결'은 최적의 의사결정을 위한 최선의 도구일까? 가끔 민주주의의 작동원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때로 묻힌 진실은 타이밍을 놓치거나 다수에게 정확한 정보를 줄 수가 없을 때 배를 산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교황 선출을 위한 행정 절차를 총괄하는 책임자로 맡겨진 로렌스 추기경(랠프 파인즈)은 힘주어 말한다. 의심이 확신보다 더 필요한 덕목일지 모른다고.
우리는 너무 쉽게 확신하고 상대를 배척한다. '콘클라베'는 민주주의는 지난한 합의의 과정임을 일깨운다.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언제나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고 때로는 지극히 비효율적이더라도 그 비용울 치를 준비가 되어있을 때 완벽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는 것과 함께.
우리도 지금 최고 의결 기관에서 결정에 진통을 겪고 있고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콘클라베식 결론을 위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떤 경우든 '사회통합'이나 '법적 정의'에 가까운 최적의 결론을 기대할 뿐이다.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본 랠프 파인즈는 많이 늙었지만 연기의 무게감은 더해져 몰입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수녀로 나온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인 잉그리드 버그만의 모습에 근접해 가는 듯했다.
때로 세월의 무게는 얼굴에 주름을 남겨 인간의 품격이나 깊이를 더하게 만들기도 한다. 배우의 얼굴에 덧칠해진 의술이 거부감을 줄 때가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