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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루드비히에게 배우며

by 호림 Mar 22. 2025

여기 한 명의 루드비히가 있다.


20세기의 지성 버트란트 러셀이 그에게 백기 투항하며 철학의 거인으로 알아보았던 청년,  경제학의 거성 J M  케인즈가 천재로 평가하고 그가 케임브리지로 다시 돌아왔을 때 열렬히 환영했던 사람이다.


이 루드비히는 두 번의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대학을 홀연히 떠나 초등학교 교사로 때 묻지 않은 동심을 가르치며 은거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부호의 아들로 제1순위 상속자였지만 누이들에게 재산을 전부 양보한 이 총명한 청년은 실크로드를 걸어갈 것만 같았다. 


부친의 뜻대로 철강업으로 가업을 잇기엔 공학도가 적절했지만 이내 전공을 바꾸어 철학 공부에 매진한다. 이 자신의 생각에 투철한 사람은 푹신한 소파에서 쉬거나 안락한 연구실에서 하는 학문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남다른 치열한 삶의 궤적을 그리며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펜을 들고 쓴 역작이 <논리철학 논고>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음악가들이 같은 음표를 보고 연주하지만 그 소리는 제각각이고 정확성을 기한다고 해도 그 연주가 주는 여운은 천양지차다. 그 말할 수 없는 느낌의 가치를 이 천재는 간파하고 있었던 듯하다.


플라톤이래 언어는 '일물일어설'처럼 하나의 단어는 하나의 상징과 의미를 내포한다고 배웠는데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역작에서 통렬하게 뒤집은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단어는 반드시 "아름다움의 이데아", 즉 아름다움이 그 자체 하나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어는 때로는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 엄청나게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오늘날 너무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의식이지만, 당시로서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플라톤적인 질서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충격이었다. 


그를 아끼며 케임브리지로 이끌어 학사 자격증조차 없던 상태로 강단에 세웠던 러셀은 수학과 논리학에 대한 그의 식견에 감탄한 나머지 교수 임용 심사 당시 "심사 대상자가 우리보다 우수한 사람을 심사하는 참으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 청년을 추켜세웠다. 한 세기가 흘쩍 지나도 이런 파격은 대학사회에 흔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생애를 돌아보고 동성애 취향에 부양가족이 없는 떠돌이라고 쉽게 폄하할 수 없다. 그 삶의 외피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지성의 위엄과 걸출한 유작이 있기에.


19세기 후반과 20세를 풍미한 지성과 예술의 대국 오스트리아 빈에는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 말러가 거의 동시대를 살며 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시절을 보냈다. 클림트와 에곤 쉴레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 지성사와 예술사에 혁신과 창조의 물결을 불어넣은 그 시절 그 도시의 기운이 내가 사는 곳에는 있을까.


눈을 안으로 돌려본다. 이 도시의 지성들은 어떤 나라를 꿈꾸는가? 도도히 흐르는 깊은 지성으로 삶의 가치를 함부로 넘보거나 쉽게 전복할 수 없는 굳건한 공동체로 만들려는 의지가 있을까. 도시 안은 정치적 파도타기의 한 흐름에 올라타 입신출세에 몸을 맡기려고만 하는 몰지성한 사람들로 붐비지는 않은가. 엉뚱한 생각들이 새벽의 정적을 어지럽게 했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음악계에서 인류의 보물이 된 루드비히 판 베토벤과 닮은 점이 있다. 베토벤은 전 생애에 걸쳐 오직 창조적인 음악에 대한 열정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헝클어진 머리칼처럼 망가진 자신의 사생활을 극복한 위인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학과 언어철학에 그 엄청난 열정으로 전 생애를 바쳤다. 


생의 마지막에 다다라서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비트겐슈타인은 죽기 하루 전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 내가 경이로운 삶을 살았다고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시오"


봄의 햇살처럼 눈부신 업적을 남기고 간 두 루드비히에게서 영원을 사는 지혜를 찾아보았다.




Beethoven: Symphony No. 7, 4th movement | Paavo Järvi and the Deutsche Kammerphilharmonie Bre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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