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의 배신

때로는 배움의 자리에 비움을

by 호림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의 공통점은 대학을 중퇴하고 세상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에이브러험 링컨과 토마스 에디슨은 거의 정규교육과 담을 쌓은 수준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앞에 대학물 먹었다고 자랑할 사람도 없을 듯하다. 노출 콘크리트 기법의 대가 안도 타다오도 그렇고, 한국의 시인 장석주도 스펙으로 승부한 사람이 아니다.


배음과 함께 비움을 생각한다. 빅톨 위고는 교양이라는 측면에서는 불균형이었고 지식수준이 형편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을 장발장이나 레미제라블로 오늘 우리가 너무나 사랑하는 작품으로 읽고 보게 만드는 폭발적 상상력의 주인공이 된 힘이 무엇인지는 여전한 수수께끼다.

반 고흐는 총명한 청년이었다. 목사가 되려다 기하와 대수 과목에서 막혀 포기하고 전도사의 길로 갈 때까지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었고, 네덜란드인으로 독어 불어 영어 스페인어 등으로 된 책을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데생의 기초를 배우는 미술 교습원을 다니다 선생들이 양에 차지 않아서 뛰쳐나왔지만, 그는 그의 지적 허기를 대신할 대상으로 결코 캔버스와 붓을 놓지 않았다.


반 고흐는 엄청난 독서량과 다국어에 정통한 젊은이로 엘리트 기질이 있었다. 이런 영민함이 오히려 정신적인 장애를 낳았는지 고흐 연구지들도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그가 세상이 인정하는 화려한 스펙으로 승부를 보기보다 진정한 예술을 찾아 나섰기에 우리가 오늘날 예술가의 대명사처럼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흐는 "내 그림의 가치를 분명 후세 사람들은 캔버스와 불감 값 이상의 가치로 인정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며, 마치 현세의 영화에 연연하지 않는 예술을 위한 순교자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교과목으로 포착되지 않는 진정한 공부는 스스로가 커리큘럼을 짜서 정말 부족한 것을 메우는 일이 아닐까.

그런 공부는 '인간'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라면 평생에 걸쳐 포기할 수 없는 과목이 아닐까.

언젠가부터 가장 재미있는 공부의 하나가 사람 공부다. 때로 한 잔의 술로 때로는 차 한잔을 앞에 두고 배우는 공부는 내 철부지 같은 객기와 어리석음을 깨우며 나를 성장시켜주었다. 가을밤이 깊어가는지 모르고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간도 공부의 하나임을 알았기에 한동안 그 시간이 많이 그리웠었다.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채워 넣는 배움 속에서 생각하지 못한 것들은 발견하게 하는 차담은 비움을 생각하게 할지도 모른다.

어떤 이의 스펙만 보고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두 마리 몹쓸 개를 키우기보다 마음의 문을 열고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멋진 개 한 마리를 키우려는 사람과의 차담이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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