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가 가져온 변화의 파고는 쉽게 체험할 수 있다. 20세기 인간 지성의 세계적인 봉우리들은 아인슈타인이나 과학계의 거봉을 빼고도 많이 있다. 많은 이들이 2016년 작고한 움베르토 에코를 문학과 사상 쪽에서 한 봉우리로 설정하는데 동의할 것이다. 특히나 그의 역작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때마침 에코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추석 TV특선영화 <움베르코 에코, 세계의 도서관>을 감상했다. 에코가 10년 정도 더 생존해 현 상황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의 작품에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에코는 그런 경우에 아마도 머리가 터질 정도라 비정상이 될 것이라고 예단한다. 인간의 정체성은 곧 그 사람의 기억이다.
챗GPT가 2023년부터 열었던 세상은 기억의 혁명을 넘어 인지기능의 혁명을 가져다준 기계지능에 대해 새롭게 성찰할 계기를 만들었다. 인간지능의 능력을 훌쩍 능가하는 기계를 우리가 언제까지 심부름꾼 정도로 부릴 수 있을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이 교차하는 시점이다. 에코는 자신이 구축한 방대한 지성의 바벨탑이 이 기계 앞에서 너무도 무력함을 느끼지는 않을까.
책에 밑줄을 긋거나 접으며 그 물성을 느껴고 소유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애서가의 큰 기쁨이지만 효율성이라는 잣대 앞에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에코의 방대한 서재 또한 자그만 컴퓨터 칩에 저장된 내용보다 크다고 할 수 없기에.
공교육은 이제 그 권위를 잃은 지 오래다. 교권은 추락하고 스타강사들에게 입시의 큰 부분을 맡기는 비정상은 언제 고져 질지 고민하는 것 또한 구시대의 유물이 될지도 모른다. 이젠 인류의 교육 체계에 대해 모두가 걱정할 시점이다. 프랑스 로랑 알렉상드르의 고민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의 아이들, 특히 저연령 아동을 지식 전달 전문가들로 둘러싸는 것이 시급하다. 이는 무엇보다도 우리 교사들을 저임금으로 대우하는 것을 중단해야 함을 의미한다. 생물학적 뇌를 양육하는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양육하는 프로그래머들보다 100배나 적게 버는 현실은 결코 정상이 아닌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IQ를 가진 사람들이 실리콘 뇌를 교육하게 하면서 인간 뇌의 학교는 황량하게 방치하는 것은 매우 경솔하고 심지어는 자학적인 태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넥스트 인텔리전스>, 로랑 알렉산드르 지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25, p.87
그래도 우리는 도서관에서의 침묵은 의무이며 필요한 일이라고 한 에코의 말은 완전히 폐기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그래야만 할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란 직업을 가진 생명체가 할 수 있는 건 지성의 시시포스 바위덩어리를 쉽없이 굴리는 일도 그 본질의 하나이기에. 연휴엔 문을 닫기에 공공도서관을 찾기도 어럽다. 그렇지만 고독 속에 자신의 지식회로를 점검할 공간은 만들 수 있다.
Pavarotti - Bellini -Vaga L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