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하거나 훔치거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을 찾아서

by 호림

우리는 물건 자체보다 브랜드를 입고 브랜드를 먹고 즐긴다.


한번 만들어진 브랜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브랜드를 좋게 만드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때로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브랜드를 나쁘게 만드는 데는 불과 한순간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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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람 관계도 사실 브랜드가 만나는 것입니다. 철수라는 브랜드가 영희를 사랑하는 것, 토마스와 스미스가 상거래를 하는 것. 크게 보면 모두 그 사람이 형성해 온 브랜드가 가지는 매력과 신뢰를 보고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브랜드가 손상이 되면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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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막연하더라도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을 찾는 직업이 예술가일 것입니다.

입체파의 거장으로 알려진 피카소도 처음엔 파리 미술계의 이단아이자 스페인 출신 촌놈이었습니다. 입체파를 상징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친구들에게 선보였을 때 시인 아폴리네르나 화가 브라크 같은 절친들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모두가 "피카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아"같은 반응이었습니다. "내가 자네 같은 친구를 두다니 실망이네" 같은 생략된 반응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피카소의 굳건한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고, '피카소'라는 브랜드를 세계화단을 지배하는 거목으로 우뚝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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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도 처음엔 여러 거장들의 그림을 모방한 작가로 파리 화단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러다 차츰 그들의 것을 훔쳐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독특한 세계를 펼쳐나갔습니다. 그 유명한 "평범한 사람은 모방하고 천재는 훔친다"는 말의 원조는 피카소입니다.스티브 잡스 또한 이 말을 마치 자신이 창안한 것인 양 즐겨 썼습니다.

아이폰은 사실 여기저기서 기능을 훔쳐서 자기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훔쳐서 자신의 브랜드가 형성되면 또 다른 아류가 자신을 모방하려고 덤빌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브랜드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기는 검은 액체 커피와 와인을 봐도 쉽게 와닿습니다. 포도주를 정확히 감별해내는 실력파 소믈리에가 아니면 대개는 그 브랜드와 품종을 보고 마십니다. 가격에 '0'이 하나 더 붙고 안 붙고의 차이인데도 사실 구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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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실험이 있습니다. 와인의 가격을 미리 알려주고 테스트하면 대부분 비싼 와인에 점수를 줬지만 블라인드로 테스트하면 구별을 잘 못했다는 것입니다.


장인이나 예술가들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단히 모방하고 훔쳐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장 값싸게 고수들의 실력을 훔치거나 모방하는 방법은 독서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만 대개는 술값보다 책값을 더 아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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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곳곳에서 인사 이야기로 술렁거립니다. 때로 수긍하기 힘든 인사도 있을 것입니다. 찬찬히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스스로의 브랜드는 어떤 것인지 돌아보면 억울함이나 희열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내가 느끼는 본질보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나에 대한 인식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사람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브랜드를 생각하며 옷깃을 여미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한 해를 정리할 즈음에 언제나 부딪히는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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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똑같은 외모와 DNA를 가진 이는 세상에 없기에 우린 이미 하늘 아래 새로운 존재입니다. 스스로 신기한 예술품으로서 가치를 더 빛나게 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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