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시대를 헤쳐온 지성과 사랑

하이데거와 아렌트

by 호림

프랑스에 사르트르 보부아르 커플이 있다면 독일에는 마르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 커플이 있다고 하면 어떨까. 물론 이들의 삶과 사랑의 양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은 당시의 지성계를 이끈 지식인이자 그들만의 방식으로 평생의 사랑을 해나갔다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의 거목인 마르틴 하이데거의 삶은 그 학문적 성취와는 별개로 한나 아렌트를 떠나서는 얘기할 수 없다. 평생 <존재와 시간>을 비롯해 많은 저술과 강연으로 현대철학은 하이데거의 재해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자적인 학문세계를 구축했지만 그에게 드리운 크나큰 그늘이 바로 나치 부역 혐의다.


아니러니 하게도 그의 평생의 연인이었던 아렌트는 유대인이었지만 그를 적극 변호했다. 하이데거가 나치에 수동적이나마 동조했고 국가사회주의 성향으로 발언했던 내용의 톤을 다운시켜 역사에 남기는 역할을 했다. 아렌트 역시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도 혼란을 겪으며 전범 아이히만을 감싸는 듯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당시에 수많은 구설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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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리고 그 사랑의 강도가 얼마나 강했는지는 유대인으로 소설가이자 교수인 엘즈비에타 에팅거가 쓴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에 리얼하게 담겨있다. 이 논픽션 역시 얼마나 진실했는지는 또 다른 검증이 필요하지만 상당 부분 편지와 문헌, 동료 학자들의 증언을 충실히 고증한 내용으로 신뢰를 준다.


나치의 광풍 속에서 생존의 기로에서 모든 이들이 우왕좌왕하는 와중에 시대를 대표할만한 지성인들은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총칼의 위협 속에서 지키며 양심을 지켜왔는지도 이 책을 또 그 시대를 읽는 재미다. 일제 식민지 치하의 지식인, 1980년대 신군부가 대학가를 점령했을 때 교수들의 생존 방식을 대입해 볼 수도 있다. 당시 어느 대학 총장님 중에는 자신의 직을 버리며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서 희생한 청춘들을 지키며 구차한 자리를 구걸하지 않아 참지식인의 사표가 되기도 했다.

아렌트와 하이데거는 서로가 대척점에 가까운 사상과 인종적인 배경을 가졌지만, 지독한 시대적 혼란 속에서도 사랑은 굳건하게 지켰다. 아렌트는 어떤 면에서 스승이기도 한 하이데거를 존경하며 그의 모든 걸 보호하려고 했다. 그렇게 이성적이고 어떤 외압에도 자기주장을 강고하게 펼치는 여성이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약했다. 그 철저한 논리와 이성도 늘 하이데거 앞에서는 무력해졌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는 제3자로서 두 사람의 그 미묘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재판관이 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의 판단은 그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문제다. 특히나 사랑이 개입된 관계의 경우는.

마르틴 하이데거, 칼 야스퍼스, 에드문트 후설 같은 당대의 석학이자 서양철학의 거목들 틈에서 한나 아렌트는 20여 년 어린 여성이었지만 자신의 정신세계를 키워갔다.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평생의 친구인 칼 야스퍼스의 제자로 박사학위를 마치면서 야스퍼스의 넓고 큰 인격의 그늘에서 자신의 인성과 사상을 깊게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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