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와 고독에 저항하는 방식

마켈란젤로의 경우

by 호림

주말 결혼식장에서 반갑고 낯익은 얼굴들을 여럿 보았다.


찌렁찌렁한 목소리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중년 신사의 풍모는 간데없는 구부정한 노인 한 분을 보았다. 한 때 내가 모시기도 했기에 한 참 시간을 내어 사는 모습을 들어보았다. 사회적 존재감을 찾기가 어렵고 어떤 도전이 없으니 삶이 나른하고 우울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쓸쓸하다는 느낌을 전한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조각과 회화의 거장 미캘란젤로는 장수했기에 많은 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그 노년의 상실감을 이렇게 쓰기도 했다. "노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노년이 되었을 때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 노년을 참을 수 있기를. 노년이란 미리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 닥칠 생의 겨울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동안의 성취나 걸어온 길에 만족하며 여한이 남지 않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대개는 조금 아쉽고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도 남을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경우 71세에 새로운 과업에 도전했다. 그 당시 평균수명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이다. 미켈란젤로는 20대에 조각상 '피에타'와 '다비드'를 만들었지만 초년 출세의 불운이나 교만에 갇히지 않았다. 50대에도 메다치 예배당의 조각을 제작했고, 60대에는 회화사의 기념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완성했다. 작품 제작을 위해 천장에 매달려 살다시피 한 4년의 시간 동안 미켈란젤로의 건강은 상당히 악화되어 친구들과 대비할 때 엄청한 노인으로 보였다고 한다.

이만하면 두 다리 뻗고 생의 마지막을 맞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대단한 예술가의 삶이었지만, 자신의 열정을 불사를 무언가가 71세 다시 그에게 다가왔다. 1905년에 착공해 무려 40년간 건축 중에 있었던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 책임자 안토니오 다 상갈로가 죽었다.

이제 그 적임자로 교황은 '천지창조'때처럼 미켈란젤로에게 최후의 낙점을 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89세까지 살았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의 필생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지만 결국 생전에 완공을 보지 못했다.


미켈란젤로가 72세에 쓴 시 중에 "이제 나의 백발과 고령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미 내 손 안에는 저승행 티켓이 들려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독신으로 자녀가 없었던 그는 조카에게 "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실패하지 않을 것이고 나 자신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

말년에도 삶의 불꽃을 처절하게 불태운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모두가 따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으로서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가 남긴 '인간의 무늬'는 아름답게 후세에 남을 것이다.


그의 사후 수많은 장인과 예술가의 손을 거쳐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17세기 중반에 성 베드로 대성당은 완성되었지만, 그 설계자는 미켈란젤로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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