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지만, 돌아보면 소통은 이론보다 현실이라 서툴고 미흡한 면이 있었다. 가족과 또 친구와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상처를 내면에 쌓아두기보다 오늘의 새로운 해가 뜨면 잊어버리는 편이다. 때로는 알코올이 포함된 음료의 힘에 약간은 기대기도 한다.
진실의 문이 열리고 의혹의 그림자가 걷히면 언제나 태양은 쨍쨍하게 비치기에 걱정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참고 견디는 것 또한 삶을 예술로 만드는 과정이다.
최근 기업에서 중책을 맡은 후배가 이런저런 진실과 오해 사이의 틈바구니에서 마음을 다치고 직장생활의 위기가 왔다고 한다. 아는 범위의 지식과 인맥으로 내 일처럼 조언을 하고 실행을 주문했고 결과가 만족할만한 편이다. 근본적으로 오너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비 온 뒤에 땅은 더 굳어질 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세상에 거짓말은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가 그것이다. 번드르르한 언변과 편집된 숫자는 항상 판단을 흐리게 한다. 우리는 진실의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거짓말이라는 커다란 장벽 앞에 또는 여러 악한 세력들에게 마음을 다치기도 한다.
대화는 상대적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법은 최후의 수단이다. '법에 따르겠다', '법대로 하자'고 하는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더 큰 반작용을 불러온다.
부드럽게 소통하고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 한다. 법에 호소하는 일은 최후의 수단이어야지 남발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변호사들 영업에는 도움이 안 되더라도.
예술의 경지에 이른 소통은 언제나 법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한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낡은 경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진정성'이라는 보석은 언제나 환영받는다는 사실은 소통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