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잘 알려진 시이지만 어릴 때 교과서에서 볼 때는 그 깊은 정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경지의 정서인지 이해도 안 되고 시험에 나오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담담히 읽고 외우다시피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화담 서경덕徐敬德) 처사, 녹수 황진이(黃眞伊,) 백호 임제(林悌) 선사의 멋과 낭만, 슬픔의 정서가 녹아있는 시들은 왜 걸작으로 회자되는지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황진이는 조선 중종에서 명종에 이르기까지 활동한 시서화에 능한 기녀였습니다. 그 유명한 박연폭포, 화담 서경덕과 함께 황해도 송도의 이름난 삼절이었습니다. 익히 알려졌듯 뛰어난 지성과 미모로 많은 선비들의 심금을 울린 여인이었습니다.
여기서 국어시험 문제가 떠오릅니다. 다음 중에서 송도 3절이 아닌 것은?
1. 박연폭포 2. 서화담 3. 송도사 4. 황진이
사지선다형 문제를 출제하는 국어 선생님의 고심을 알듯합니다.
황진이를 둘러싼 숱한 일화가 있지만, 면벽 30년의 수도승 지족선사의 불심까지도 흔들 정도의 지성과 외모도 야사로 전해집니다. 황진이는 말년까지 세상의 금은보화를 모두 물리치며 오직 화담 서경덕 만을 사모했고 평생을 거문고와 술, 그리고 시문으로 서로 화답하며 끝까지 스승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황진이가 화담 서경덕이 세상을 떠났을 때 화담의 묘소를 찾아 지은 허전하고도 슬픈 정서가 가득 배어있는 시를 음미해봅니다.
산은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로 흘러가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이 가고 아니 오더라.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임의 정이요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 손가
녹수도 청산 못 잊어 울어 예어 가는고.
서경덕 처사의 죽음을 이렇게 애끊는 심정으로 애도한 천하제일 황진이도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되고 이를 슬퍼한 이가 백호 임제선사입니다. 임제가 그 묘를 찾아가서 쓸쓸한 슬픔을 토로한 아래의 시 또한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시입니다.
靑草郁谷 眠臥乎
청초욱곡 면와호
紅顔何處 白骨埋
홍안하처 백골매
執盞無勸 其哀悼
집잔무권 기애도
한글로 교과서에 소개된 내용으로 다시 되새겨봅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잡아 권할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
선비의 처연한 슬픔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새벽에 잠을 뒤척이다 시집 한두 권을 펼쳐 다시 보는 교과서의 명시들은 현대국어와는 다른 결의 정서를 느끼게 했습니다.
황진이와 관련된 세편의 시는 한국 선비의 낭만을 되돌아보게 했고 시에 담긴 멋스러움과 깊은 사랑이 푸른 산과 맑은 물처럼 서로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마침 배경으로 깔아놓았던 구스타프 말러의 잔잔한 교향곡이 이런 정서와도 어쩌면 통하지 않을까 합니다.
알마 말러는 구스타프 말러와 사귀면서도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건축가 그로피우스나 작가들, 유명인사들과 어울려서 사교계에서 주목받는 여인이었습니다. 말러의 아내가 되었으나 결국 말러의 품을 떠났던 알마 말러는 미모와 교양이 대단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말러의 뮤즈로 기쁨과 고통을 함께 안겨주었던 알마 말러의 존재가 황진이와 겹쳐 보입니다.
아마도 평생 화담 서경덕, 한 남자만을 연인이자 스승으로 따랐던 황진이가 이런 말을 들으면 어디 감히 나를 한갓 서양의 끼있는 여인에 비한다며 노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