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업에 오래 종사해 다양한 국적의 분들과 거래를 한 선배가 과거를 회고한다. 소비에트 연방이 페레스트로이카로 해체되고 중국과의 교류가 본격화된 1990년대 중반의 이야기다.
소련처럼 중국도 분할되거나 지금과는 다른 길을 가지는 않을지 술자리에서 화제가 되었을 때 중국인들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고 한다. 그 이유로 소련은 레닌과 마르크스 외에 그다지 많은 책을 읽지 않지만 중국은 다르다고 하고 중국 공산주의 붕괴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고대로 가거나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러시아 쪽이 풍부함에 있어서 중국에 비해 부족한 면도 있어 보인다. 물론 근세사의 음악, 문학 등 찬란한 문화유산을 살쳐보면 러시아도 대단하긴 하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에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이 러시아의 웅대한 문화적 영토를 비옥하게 했기 때문이다. 종이를 발명한 나라, 공맹의 유구한 유교문화, 이백과 두보 시인......
삼국지와 유교문화가 상징하듯 중국은 사실 우리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선배가 만났던 중국인들도 문화적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채윤이 쓰기문화의 혁명을 가져온 종이를 발명한 것과 사마천의 <사기>가 말해주는 기록문화, 경전을 읽고 암송하는 문화도 중국문화의 경쟁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의 국가사회주의의 전횡에 가까운 행태를 보면 '덩치'외에는 별로 본받을 게 없는 나라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여기에 더해 분서갱유의 흑역사는 중국 역사의 오점이기도 하다.
결국 군사력 못지않게 국가의 지력이 강대한 나라가 문명을 지배하고 세계사의 주류가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인데, 그 근간을 이루는 것이 책을 통한 독서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어떤 사실을 인식할 때 본능적으로 문헌의 근거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망구엘의 말도 이런 맥락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또 어디쯤 서 있는지를 살피려고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읽는다. 우리는 이해하기 위해, 아니면 이해의 단서를 얻기 위해 읽는다. 우리는 뭔가를 읽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한다. 독서는 숨 쉬는 행위만큼이나 필수적인 기능이라고 하겠다.
-알베르토 망구엘 <독서의 역사> P 15
독서와 글쓰기가 치매예방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다. 같은 내용을 TV나 유튜브로 보는 경우는
치매예방 효과가 없다고 한다. 두뇌를 밀도 있게 활용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은 상식일 수도 있다. 온 나라가 '확증편향'의 중병에 걸려 서로 편 가르기를 하고 상대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어쩌면 유튜브나 인스턴트 지식을 무분별하고 흡수하고 사이비 지식인들이 창궐하다시피 하는데서 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신이 듣고 보고 싶은 것에 계속 노출되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귀가 두 개인 이유가 입으로 하는 자신의 주장보다 두배 더 많이 읽고 들으라는 상식이 된 섭리를 외면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독서를 통한 차분한 사색, '똘레랑스'를 잃어버리고 상대방을 압도하려는 주장만 난무하는 나라는 국가와 개인의 지력(知力)이 점점 더 왜소해지고 교조주의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의 효용을 깊이 생각해보는 휴일에 클래식은 역시나 듬직한 친구로 내 귓가를 스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