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모차르트의 이름 앞에는 작아지는 이름들이 더 많습니다. 이들이 덜 알려진 것은 작곡 기술이나 음악의 완성도 같은 면에서 부족했기 때문일까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시기를 잘 못 만나거나 여러 불운의 요인 탓에 빛을 못 본 경우도 무수히 많습니다.
현대의 대중가요도 뒤늦게 빛을 보거나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며 부상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팝스타 마돈나의 경우도 데뷔 시 그 과감한 노출이나 가사의 선정성 탓에 아예 고개를 돌리는 제작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수많은 거절에 지칠 즈음 마돈나의 가능성을 본 제작자가 '이거다'하면서 "대단한 물건인데"하는 마음으로 캐스팅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마돈나의 이름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마돈나의 회고처럼 시골 고향으로 가서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저 그런 청춘의 시기를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비제의 <카르멘>,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심지어 베토벤의 상당수 작품들 모두가 처참한 초연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경우입니다. 고서적상에 먼지만 뒤집어쓰고 수백 년을 잠자던 악보를 파블로 카잘스가 발굴하고 연주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고 사랑받는 곡 중의 하나인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없었을 것입니다.
클래식의 역사를 3,4백 년 정도로 넉넉히 잡으면 결코 긴 시간에 형성된 음악이 아닙니다. 클래식의 영토에 편입된 수천 년 흘러온 민요도 있고 다양한 음악의 DNA가 들어와 클래식의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죽은 해가 1975년이었다고 하면 놀랄지도 모릅니다. 결코 자신이 태어나기 오래전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의 <왈츠 모음곡>이나 <로망스> 같은 곡들은 한국인들의 애청 클래식 선곡 목록의 상단을 차지합니다. 냉전시대에도 예술은 국경과 이념을 초월했기에 그의 음악은 소련과 미국을 넘나들었고 미국의 자존심 뉴욕필과 번쉬타인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경우도 1960년대 이후에 재조명되면서 그 음악의 진가가 재발견된 경우입니다. 금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빛만큼이나 창백한 지식인의 우수가 깃들어 보이는 말러의 음악이 서구 지성인들의 마음을 흔든 것입니다. 이후 1990년대 이후 한국에도 임헌정 선생이나 말러에 주목하는 한국의 오케스트라들이 '말러 앓이'를 했다고 할 정도로 유행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재발견되고 해석되는 '복불복'의 운명으로만 클래식이나 예술이 흘러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단단한 실력은 기본이겠지요. 사람의 마음을 끄는 예술의 매력은 한순간의 행운으로 잠깐 빛을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긴 호흡으로 오래 남은 음악은 결코 운만으로 사랑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음악을 '클래식'이라 부르는 것이겠죠.
자신의 '업'에서 클래식으로 남을 어떤 것들을 찾는 것이 생을 진지하게 대하는 이들의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벌써 10/365이 흘러간 2022년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