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준 선물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클래식

by 호림

독일 바이올리니스트로 내한공연도 자주 했고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안네 소피 무터는 2018년 당시 54세일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예전보다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어요.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세월은 여러분의 뇌에만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에도 자국을 냅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죠"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만나면 그와 연결된 삶의 순간이 떠오른다. 추억에 잠기게 하고 엷은 미소를 띠게 만든다. 어떤 경우는 삶의 시름을 완전히 잊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의 장면들과 유사한 일을 우리도 가끔 일상에서 경험할지도 모른다.

엔리오 모리코네는 전설이 된 영화음악의 '클래식'을 여러 곡 남겼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장년이 된 토토가 고향을 방문했을 때 시골 영화관은 없어졌고, 인걸도 산천도 의구하지 않았다. 미션의 주제 선율로 흐르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넬라 판타지아>로 이어져 성악가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의 사랑이 익어가는 순간에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심금을 울린다. <쇼생크 탈출>에서 죄수들이 넋을 잃다시피 한채 한동안 말없이 서서 들었던 곡은 모차르트의 <편지의 이중창> 이었다. 죄수들처럼 이 음악을 알고 있었거나 몰랐거나 그 선율의 아름다움에 반하지 않을 사랍도 많지 않을 것이다.

<피아니스트>에서 연주자의 목숨을 살린 건 나치 장교를 감동시킨 클래식 선율 때문이었다. 월남전의 참상을 고발하는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에는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장중하게 전우의 시체를 바라보는 스크린의 슬픈 눈빛과 함께 깔린다.


사랑의 희열이 넘치는 순간에도 극한의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절망의 골짜기를 헤매고 있을 때에도 클래식이 된 음악은 우리의 정서를 어루만졌다.


안네 소피 무터의 말처럼 세월은 뇌와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삶의 추억이 쌓이고 그 순간을 돌아볼 일이 가끔 생기면 우리는 그 장면을 음악과 함께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선율은 기억하되 곡명은 몰라도 그만이다. 그러기에 서푼짜리 음악 전문지식은 대수가 아니다. 더구나 그걸로 밥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면.

PC통신을 경험한 세대는 그 시절의 영화 <접속>에서 전도연과 한석규가 애타게 만나려다 접속하지 못하는 정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 장면보다는 오히려 그때 나오는 경쾌한 팝 음악 <러버스 콘체르토>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 가사를 음미해본다. 가사는 연인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사랑의 말처럼 다가온다. 이 경우는 팝 음악도 이미 '클래식'이 된 경우다. 사라 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일품인 이 팝송의 선율도 바흐의 손끝에서 나왔다. 바흐의 미뉴에트 G장조의 선율이 여러 현대 작곡가들의 손을 거쳐 크리스천 팻졸드가 작곡한 것이다.


A Lover's Concerto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