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를 보는 시선

텍스트를 찾아서

by 호림

지금도 파리 루브르 앞에 길게 줄을 선 인파들은 무수히 보아온 복제품 대신 하나밖에 없는 원작 <모나리자>앞에서 그 현장성을 느끼고 진품의 아우라를 보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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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의 <모나리자> 외에도 세상에는 무수한 모나리자가 있다. 영화 <베티블루37.2>에도 모나리자는 등장한다. 원본과 유사한 짝퉁 그림이다. 모나리자는 영화의 도입부에서 주인공의 정사 신(scene)을 침실 벽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하고 많은 그림 중에 왜 <모나리자>였을까? 장 자크 베네 감독의 취향이나 미장센에 대한 안목이 <모나리자>를 데려왔거나 우연히 세트장에 걸려있어서 그대로 놓아두었을지도 모른다. <모나리자>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든 텍스트가 된 그림에는 무수한 해석이 존재한다.


누구나 저마다 보고 느낀 자신만의 갤러리가 마음속에 있다. 요즘 웬만한 도시의 큰 건물에는 로비가 상설 전시관이 되어 작가들의 작품을 번갈아 전시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그림은 시선을 꽉 붙잡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기도 한다. “저 정도라면 나도 그릴 수 있을 거야”하는 그림도 보인다. 그중에는 시선이 좀 불편해지는 그림도 한 있다.


화이트 큐브에 가두어놓고 전시하는 그림만이 고고한 리그로 존재할 높은 가치가 있을까? 계절이 바뀔 때면 절정의 단풍으로 하얀 은세계로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그림 같은 풍경’ 또한 시선을 붙잡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들기도 한다. 거대한 사진기를 대신하는 고성능 휴대폰은 저마다의 작은 갤러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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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공부는 텍스트와 해석의 과정을 거친다. 학생들은 교과서를 읽고 외우며 이해한다. 종교인들의 수양과 공부에 성경을 읽고 불경을 외우는 것은 중요한 일부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명곡이나 명화는 전문가의 시선과 세월의 여과를 거쳐 텍스트가 된다.


베토벤의 교향곡, 다빈치의 모나리자......

세상에 존재하는 텍스트는 만들어낸 사람의 생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도 그 텍스트보다도 더 많은 무수한 해석을 낳았다. 해석의 자유는 어떤 권위로도 억압할 수 없다. 클래식이 된 음악을 듣는 나만의 느낌을 그 어떤 이도 강요할 수 없듯이 텍스트가 된 명화를 보는 나만의 시선 또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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