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해 여류시인, 여교사 같은 말이 요즘은 성차별적인 언어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와 구별되는 ‘그녀’라는 단어 또한 논란의 대상이 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분야에 따라 신체적 한계보다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 같은 다른 요인으로 여성에게 미답의 경지로 남은 영역이 있습니다. 아직껏 클래식 애호가들에겐 카라얀의 은발, 토스카니니의 콧수염은 남성의 전유물인 양 마에스트로와 지휘봉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역사를 쓴 지휘자 열전으로만 여러 권의 책이 나올 정도인데 여성 지휘자가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몸이 재산인 프로 운동선수들이나 지망생들은 가끔 치명적인 부상으로 중도 하차해 직업을 하는 수 없이 바꾸기도 합니다. 악기 연주자들 또한, 신체가 완전치 않으면 프로 연주자로 성공하기 힘듭니다.
슈만은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피아니스트의 길을 접고 작곡가와 평론가로 활약했습니다. 시벨리우스는 한때는 전도가 유망한 바이올린 연주자였지만 마음의 병인 무대공포증을 이기지 못하고 작곡가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현대로 오면서 여성 지휘자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유명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자리를 잡은 경우도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사라 힉스는 어릴 때 피아니스트로 재질을 보이며 성장하다 자신의 손이 피아니스트로서는 작은 핸디캡을 이기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급기야 손에 무리가 갔고 의사는 힉스가 17세 무렵 “힉스의 손이 반복연습에 의한 스트레스성 장애”라는 진단을 내리자 힉스는 절망했습니다. 절망의 골짜기에서 울부짖을 때 아버지가 “그만 울어라. 내 사랑스러운 딸아. 그래도 스틱을 들 수는 있잖니?”라는 말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았습니다. 힉스는 '지휘'라는 길에 접어들어서서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현재 큰 무대를 활발히 휘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