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일, 인간의 일

천재 화가 마사초를 생각하며

by 호림

휴일 아침, 시선을 붙잡은 한 편의 그림이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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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년에 마사초는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브란카치 가문을 위해 이 <낙원 추방>을 그렸습니다. 부끄러움에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는 아담과 넋이 나간 듯 허공을 바라보는 이브의 표정이 인상적입니다. 당시 24세의 청년이 이런 작품을 그렸습니다.


27세,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 마사초(1401-1428)가 죽은 나이입니다. 웬만한 한국 청년들이 군대에 갔다 오고 대학을 졸업해 갓 취업할 나이입니다.


이 청년이 만약 미켈란젤로만큼이나 오래 살았다면 르네상스 미술의 역사도 달라졌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사초는 1424년부터는 마솔리노와 함께 피렌체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교회의 브란카치 예배당의 장식을 맡았고, 이듬해에는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교회의 제단화를 함께 제작했습니다. 이 작품들에서 마사초는 선 원근법을 보여주기 위해 혁신적인 방법들을 적용해 원근법의 창시자로 미술사에 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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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1428년에 완성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의 <성 삼위일체, 마리아와 사도 요한 그리고 두 명의 봉헌자들>에 적용한 원근법도 미술사의 혁신이었습니다. 이 프레스코 작품은 체계적인 선 원근법을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본 당시 사람들은 너무나 입체적으로 보여서 마사초가 교회의 벽에 구멍을 냈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짧은 삶에도 마사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사초가 1428년 가을에 사망한 이유로는 그를 질투한 화가가 독살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오래전에 살다 간 청년 마사초가 남긴 말은 이렇습니다.


"나는 그렸고 내 그림은 삶과 같았다. 나는 인물들에 움직임, 열정, 혼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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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사는 우리가 종사하는 다른 직업에 대입해도 좋을 말이 아닌가요. 열정과 혼을 다한다면 어느 분야에서건 성공에 가까이 가겠지요. 조금 더 양보해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후회를 남기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마사초의 그림처럼 후회가 몰려와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아담과 이브의 표정처럼 부끄러운 삶에 통탄하지는 말아야겠지요.


종교가 없더라도 아마 인간의 일을 심판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은 나쁠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인간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신이 정한 질서와 정의를 거스르는 무례함을 범할 때 불행에 빠진다고 한 바 있습니다.


인간은 죽음이 두려워 신을 만들었고 그 신이 유한한 생에 갇힌 인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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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인간의 일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고 신의 일은 사랑하기보다 증오하고 다투는 인간을 꾸짖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아침을 여는 음악을 작곡한 이는 모차르트였습니다. 이 음악 천재의 수명이 35세였으니 마사초보다는 장수한 셈이네요. 신은 그 재능을 시샘한 천재들을 이렇게 빨리 데리고 갔나 봅니다.


아쉬움 속에 신이 일찍 데려간 천재들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도 우리 인간의 일이 아닐까 합니다. 스스로의 부족한 재능에 불평하기보다 신이 천천히 데려갈 것이라고 안도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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