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선 스토리가 이겼다

by 호림

도쿄에는 지금 간절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요즘 날씨보다 더 뜨거운 인간승리의 스토리, 안타까운 좌절의 이야기가 우리를 감동시킨다. 시상대 꼭대기에 자국 선수가 서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다 있겠지만 국적을 떠나 최선을 다한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필리핀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되어 필리핀의 스포츠 역사를 바꾼 여성 역사(力士) 하이딜린 디아스는 가난을 이기려 은행원이 되려다 역도에 승부를 걸었다고 한다. 골프 강국 남아공 선수로 PGA에서 활약하던 로리 사바티니는 올림픽을 위해 아내의 조국 세르비아로 국적을 바꿔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에는 여홍철, 여서정 부녀 메달리스트가 최초로 탄생했다.


엄청난 시간을 솟아오르고 추락해 기록을 만들고 자세를 만든 높이뛰기 우상혁, 다이빙 우하람 선수도 메달보다 더 값진 4위를 했다. 우상혁은 수도 없이 바에 걸리며 기록을 단축했을 것이고, 우하람은 다이빙대에서 무수히 추락할수록 연기 점수는 더 올라갔을 것이다.


나라를 대표한 선수들이 엄청난 시간을 솟아오르고 추락하고 달렸지만 모두가 금메달을 목에 걸 수는 없었다.

소치에서 억울할 수도 있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자신은 메달보다 원 없이 펼친 연기에 만족한다고 말한 김연아의 의연한 인터뷰를 기억한다.

이제 선진국 시민이 된 대한의 아들딸들은 기대주였지만 국민들 바람대로 메달을 못 따도 죄인인 양 고개를 숙이지도 않는다. 응원하던 국민들도 태권도 종주국의 ‘노골드’를 수모가 아니라 국제화의 결과로 오히려 좋은 징조라며 담담히 받아들일 줄도 안다.

체조의 전설 코마네치가 이미 정해진 바일스의 자리가 있기에 다른 선수들은 은메달에 만족하는 것이 당연할 정도라고 극찬한 체조 선수가 있다. 도쿄에서 사상 최초로 6관왕에 올라 세계체조의 역사를 바꿀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미국의 체조여왕 시몬 바일스는 은메달 1개(단체전)와 동메달 1개를 목에 걸고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골프의 입스(yips)처럼 체조에도 트위스티스(twisties)가 있다. 체조 선수들이 공중에서 몸을 움직일 때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지 못해 순간적으로 좌표를 잃어버리는 걸 트위스티스라고 한다. 수천 번 수만 번을 연습해도 이런 경우를 당하는 수가 있는데 바일스도 그런 상황이 되어 몇 종목은 경기 자체를 포기하기도 했다. 바일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바뀐 건 없어요. 전 아직도 체조를 사랑합니다. 결과와 관계없이 한 번 더 경쟁할 수 있었던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파리올림픽요? 우선 이번 올림픽부터 정리할게요. 지난 5년은 정말 긴 시간이었어요.

금메달을 손에 쥐지 못한 안타까운 바일스의 미소를 보며 그녀가 파리에서 멋지게 비상하든 안 하든 설사 수만 번 구르고 넘어졌던 제조장을 떠나서도 국적을 떠나 팬의 한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이런 안타까운 바일스의 이야기도 있고, 넘어져서 울고 있는 많은 청춘들이 도쿄에서 무수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옆에 있다면 당신의 5년은 결코 메달로 평가될 수 없는 소중한 나날이었다고 등을 두드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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