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고요와 전투

by 호림


의학도 베를리오즈가 해부학 시간에 실험실을 뛰쳐나오지 않았다면 클래식 음악사의 파격 <환상교향곡>은 없었을 것이다. 법학도 슈만이 부모님의 기대대로 변호사의 길로 갔다면 <트로이메라이>나 그의 수많은 명곡도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의 권유로 갔던 길에서 “이 길이 아닌가 봐”하고 예술이라는 가시밭길로 걸어간 베를리오즈와 슈만. 그들이 오선지에 남긴 큰 발자국을 보며 지금도 전 세계 연주자 중에서 누군가가 열심히 연주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큰 기업에 다니다 창업에 나선 청년을 만났다. 여름휴가 얘기를 꺼내자 자신에겐 휴가가 사치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일에 파묻혀 사는 삶에 불만은 없다고 한다. 아직 사무실 임대료에 직원 월급 주기도 벅차고 걱정이 많은 형편이지만, 모든 걸 주도적으로 결정해 실현해나가는 재미로 그런 걱정들을 이기고 있다고 한다.

걱정거리가 거의 없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안락한 주거만 보장된다면 그것도 걱정이 아닐까. 크고 작은 걱정거리와 도전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이 삶의 모습이다.

서머셋 모옴의 소설 <달과 6펜스>에는 화가 고갱의 고뇌가 녹아있다. 금융인으로 살던 고갱은 홀연히 가족과 도시를 떠나 남프랑스 아를의 태양 아래서 고흐와 예술혼을 나눈다. 그것으로는 모자라 타히티섬의 원시림 속에서 원주민 여성들과 자연을 원시의 모습 그대로 캔버스에 담았다. 고갱의 삶은 고단한 여정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가 남긴 작품에는 삶의 근원을 응시하는 눈이 들어있다.


이탈리아 작가 디노 부차티의 소설 <타타르인의 사막>의 주인공 드로고 중위는 발령지인 황량한 사막에서 고민한다. 직업군인인 장교로서 아무런 전공(戰功)을 세울 수가 없을 것 같은 예감에 불안해한다. 군인이라도 전투는 두려울 수 있다. 전투를 준비하는 것도 군인의 모습 중 하나이기에. 그렇지만 직업군인으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주인공의 내면은 우리 삶을 다시 보게 만든다.

인생은 전쟁터는 아니지만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무덤으로 간다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는 그 무수한 자기계발서의 논리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자신의 생각을 부단히 깰 수 없는 틀에 갇힌 삶, 그러한 삶을 무한히 반복 재생하는 일상과 유유상종의 만남에 의미는 무엇일까를 돌아보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카프카는 “책은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고 했다.

어쩌면 드로고 중위가 사막에 서서 고민하는 것처럼 자신의 내면에 파도가 일어나지 않는 삶, 사막의 고요만 있는 삶이라면 카프카의 도끼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안락과 타협하려는 마음을 깨는 청년과 소설이 두 가지 도끼가 되어 얼음처럼 내면을 깨운 여름밤은 유달리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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