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

짧은 글 긴 침묵

by 호림

독일의 유물론 철학자

포이에르바흐(1804~1872)는

인간이 종교를 만든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시간의 무한성과

전지전능함이라는

능력을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머릿속에서 신을 빚어냈고,

그것을 자기 밖에서

실재화시킨 뒤

그 앞에 인간이

무릎을 꿇게 된 것이라고.


종교의 유무, 믿음의 종류를 막론하고

전지전능한 존재 앞에

겸손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

포도주를 한 잔 하면서

풀리지 않는 삶의 실타래나

치기 어린 질문을 던지곤 하며 만나는

가톨릭 사체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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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교에도

소속되지 않은 점이 자유롭기에

그분에게 편하게

이런저런 질문을 드립니다.

그분은 대답 대신

책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그분이 추천한 책 미셸 투르니에의

<짧은 글 긴 침묵>을 일독했습니다.


평생 사제관에서

혼자 산 사람답게

저자는 침묵의 언어와

공간의 비어 있음을 예찬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공간을 채우고

관계를 채우면서 살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없음'이

존재의 필수적인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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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시간이 없다면

금세 자신의 정신적 공간은

채울 수 없을 정도로

차 버릴지 모르니까요.


때로 공간을 비우고,

스마트폰의 일정표를 비우고,

다른 생각이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 놓아야

새로운 관계나

신선한 생각이 찾아올

틈이 생길 테니까요.


혼인으로 또 친구 맺기로

관계를 채워 가족을 만들고

모임을 만드는 것은

사회적 동물에게

삶의 큰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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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반대로

사제들은 비움과 고독의 길을 가지만

살아있는 한 궁극의 비움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음악도 삶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없는 비움과 포즈가

전체를 완성합니다.

미술에서도 미니멀리즘은

비움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잘 듣지 않는

CD와 LP판에는

곡과 곡 사이에

6초 정도의 포즈가 있습니다.


비움이 있어야 다음 곡을 듣고

내일을 맞을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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