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비움과 채움
짧은 글 긴 침묵
by
호림
Apr 14. 2022
독일의 유물론 철학자
포이에르바흐(1804~1872)는
인간이 종교를 만든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시간의 무한성과
전지전능함이라는
능력을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머릿속에서 신을 빚어냈고,
그것을 자기 밖에서
실재화시킨 뒤
그 앞에 인간이
무릎을 꿇게 된 것이라고.
종교의 유무, 믿음의 종류를 막론하고
전지전능한 존재 앞에
겸손하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
포도주를 한 잔 하면서
풀리지 않는 삶의 실타래나
치기 어린 질문을 던지곤 하며 만나는
가톨릭 사체분이 있습니다.
어떤 종교에도
소속되지 않은 점이 자유롭기에
그분에게 편하게
이런저런 질문을 드립니다.
그분은 대답 대신
책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그분이 추천한 책 미셸 투르니에의
<짧은 글 긴 침묵>을 일독했습니다.
평생 사제관에서
혼자 산 사람답게
저자는 침묵의 언어와
공간의 비어 있음을 예찬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공간을 채우고
관계를 채우면서 살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없음'이
존재의 필수적인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움의 시간이 없다면
금세 자신의 정신적 공간은
채울 수 없을 정도로
차 버릴지 모르니까요.
때로 공간을 비우고,
스마트폰의 일정표를 비우고,
다른 생각이 들어올
공간을 만들어 놓아야
새로운 관계나
신선한 생각이 찾아올
틈이 생길 테니까요.
혼인으로 또 친구 맺기로
관계를 채워 가족을 만들고
모임을 만드는 것은
사회적 동물에게
삶의 큰 부분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사제들은 비움과 고독의 길을 가지만
살아있는 한 궁극의 비움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음악도 삶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없는 비움과 포즈가
전체를 완성합니다.
미술에서도 미니멀리즘은
비움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잘 듣지 않는
CD와 LP판에는
곡과 곡 사이에
6초 정도의 포즈가 있습니다.
비움이 있어야 다음 곡을 듣고
내일을 맞을 수 있겠지요.
keyword
종교
침묵
독서
7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호림
직업
기획자
삶에서 '클래식' 을 찾고 그 울림과 떨림을 나누고자 한다. 몇 권의 책으로 대중들과 소통했다.
팔로워
85
제안하기
팔로우
작가의 이전글
카덴차를 위해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질 때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