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이 이긴다.
무수한 습작의 기억들을 회고하는 문인들이 있다. 때로는 "이 길이 아닌가 봐"하며 자신이 엉뚱한 삽질을 하고 있는지 번뇌와 생활고 속에서도 배운 도둑질을 한다는 심정으로 길을 걸어간 경우도 많다. 어쩌면 글쓰기는 "다시 쓰기'다. 라이팅(writing)은 리라이팅(rewriting)인 것이다.
많은 예술가들도 스스로 돌아보면 부끄러운 작품도 있다고 고백한다. 대가의 습작들도 어떤 경우는 위대함의 후광을 입어 그 '스토리'를 인정받아 가치를 재평가받기도 한다.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 일론 머스크... 세계 부자 랭킹에 빠지지 않은 사업가들의 공통점은 소문난 독서광이라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자신을 키운 건 동네 도서관이었다고 하고, 매년 '씽크 위크'를 설정해 혼자만의 사색과 독서로만 채우는 주간을 보낸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졌다. 일론 머스크 또한 학창 시절 구내 도서관의 책을 다 읽어서 읽을거리가 없자 백과서전을 읽을 정도였다고 한다. 반짝이는 '천재'로만 아는 이들은 실상 우직하게 무지막지할 정도로 독서에 탐닉했다.
피카소도 90을 넘기며 장수했는데 작품 또한 다작이다. 거의 매일 화실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그림을 그리는 시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 많은 피카소의 여인들과의 사랑에 할애하는 시간도 아끼지는 않았겠지만. 반 고흐 또한 그 짧은 생애치고는 적지 않은 8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모네, 르느와르, 렘브란트도 다작을 한 작가들이다. 과작의 대가보다 다작 작가들이 위대한 경우다 훨씬 더 많다.
17세기 바로크 미술의 대가로 알려진 네덜란드의 페테르 파울 루벤스 또한 다작 화가로 빼놓을 수 없는데, 그는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것도 소품이 아니라 대작 위주로 그렸으니 엄청난 양이다. 생존 당시 종교적인 메시지가 담긴 그림이나 '성화'로 귀족사회의 많은 사랑을 받은 루벤스이기에 그림 주문이 쇄도했다. 루벤스 스스로도 1611년의 편지에서 지인에게 이렇게 고백한 기록이 있다.
천명이 넘는 사람의 청을 거절해야 한다네. 심지어 친척과 아내의 부탁마저도 말이야. 가까운 이들의 불평을 듣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라네.
아틀리에를 운영하면서 제자들의 조력을 받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어쩌면 앤디 워홀식의 팩토리 체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작품 컨셉을 제자들에게 지시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도 한다. 어쨌거나 대가들의 성실한 붓질이 없었다면 미술사의 명작들도 없었을 것이다.
모차르트와 슈베르트가 30대에 요절했어도 남진 작품 수는 각각 600여 곡이 넘을 정도로 거의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좋은 악상을 떠올리고 작곡하는데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뜻 번쩍이며 폭발하는 단박의 순간에 역사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 폭발의 순간은 어쩌면 지루할 정도로 더디지만 휴화산 내부의 온도를 높인 시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