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되는 말과 글
글쓰기는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애쓰는 일이기도 하다. 말하는 것과는 다른 엄밀함도 요구받기 때문이다. 우리의 표현은 말과 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정과 몸짓 같은 비언어적 요인 또한 무시할 수 없지만.
정교한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는 글이 유용하다. 글은 말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스스로 생각의 필터를 한번 더 통과하게 만든다. 생각은 부지불식간에 머릿속을 스치고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생각을 꽉 붙잡아두는 방법은 불완전한 기억보다는 글이 확실하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생각에 날카로운 주의를 기울여라. 생각은 나무에 새가 앉듯 예기치 않게 오며 일상사에
마음을 기울이면 이내 사라질 것"이라 했다. 생각을 풍부하고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은 독서가 가장 쉽고 검증된 방법이 아닐까 한다. 자신과 같은 사람만 만나지 말고 세대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때로는 견해가 180도 다른 사람의 의견도 경청하면 어떨까.
이렇게 자신의 생각이 풍부하고 유연한 토지가 되도록 가꾸면 글도 그 생각을 닮아갈 것이다. 서슬이 시퍼렇고 의견이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해도 한쪽 눈을 감아버리고 쓴 글은 설득력이 없다.
다른 차원의 생각을 부단히 시도하고 상상력을 기르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예술에 답이 있을 수도 있다. 2차원의 화폭에 입체를 구현한 피카소, 다차원의 상상을 캔버스에 담은 살바토르 달리에게서 상상력의 힘을 배울 수 있다. 베를리오즈, 쇤베르크 같은 음악의 혁명가들에게서도 혁신을 배울 수 있다.
자신의 습관이 된 루틴을 지키되 생각은 언제난 유연하게 풀어두자. 글은 그렇게 풀어둔 생각들이 손끝을 통해 나온다. 때로는 쥐어짜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숙성된 생각이 주르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하늘길이 제한되고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코로나 세상이 몸에 제약을 가하지만, 우리의 생각까지 묶어둘 수는 없다. 오히려 경험하지 못한 일상들은 새로운 생각을 더 넓은 대지에서 뛰어놀게 만들 수도 있다.
글을 쓴다는 일은 노동이 될 때도 있지만 생각을 가다듬고 나와 외부를 이어주는 최고의 유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좋은 글은 언제나 다시 다듬고 돌아보는 수고로움이 따라야 하겠지만.
리더의 말은 글보다 때로 엄밀한 필터를 거칠 필요가 한다. 절제와 이성, 감성이 조화로운 말들은 하나의 예술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말은 때로 소음이 된다. 말 또한 글이 무수한 다시 쓰기를 거쳐서 명문장이 되듯 수많은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단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과 달리 글쓰기는 고독의 방을 지키는 인내를 요구한다. 그 방에 '클래식' 같은 친구 하나쯤 같이 있는 것도 고독을 훼손하지는 않을 듯하다.
- 수전 손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