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과 비움

삶의 미니멀리즘

by 호림

시인 폴 발레리는

당시 많은 사람들의 구애를 받았던

매력적인 여인 편집자 잔 로비통과의 이별 후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나와 죽음 사이에 당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제 보니 내가 당신과 삶 사이에 있더군요.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 많은 이들을 만나고 목표를 향해 달리다 때로 쉼표를 찍으며 자신의 속도로 갑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만나는 이는 아끼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저 그런 사무적인 관계이거나 정말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에도 꼭 만나고 싶은 사랑과 우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일생이 소음이 되지 않으려면 삶과 죽음 사이에 불협화음을 줄여야 하겠지요. 잘 훈련된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화음처럼 멋지게 소리를 내고

울림을 남기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소음처럼 들리던 철부지 시절의 실수들, 미숙함으로 상처를 주고받았던 사랑과 우정...

그러고 보니 그 평가는 내 몫이 아닌 듯했지만 궁극의 평가는 시간을 공백을 두고 스스로 내리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자동차 도로에서 또 인생에서 경쟁에서 앞지른다는 생각으로만 달리면 속도를 높여야 하겠지만, 자신의 속도로만 가려고 마음먹으면 주위의 차들이나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고 스스로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미술에서도 슬로 푸드를 섭취하듯 느리게 감상하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인파들 속에 떠밀려 방학숙제를 하듯 스치며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작품을 음미하며 아주 천천히 오래 보자는 것입니다.


한 조사에서 오래 보고 있다가 눈물을 흘리거나 감동하는 작품의 첫손가락에 로스코의 그림이 꼽히기도 했습니다. 로스코의 작품은 심플함의 극치인 듯하면서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에 감동을 주는 것이겠지요.

우리 삶에도 극도의 단순함으로 압축해서 관계망에 포위되어있다가도 자신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시간의 힘으로 다시 많은 지식과 관계를 채울 수 있겠지요.


하나의 미술작품을 오래 보고 클래식처럼 긴 호흡의 음악을 마치 시간이 넘쳐서 감당을 못하는 사람처럼 한가하게 들어보는 시간, 멋진 자연의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순간...


이런 시간들을 전혀 가지지 않고 마냥 허겁지겁 더 많은 성취를 위해 달리기만 한다면 얼마나 허무할까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계획도 치밀하게 세우지 않았고 그저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선 짧은 여행에서 작은 간이역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주목받는 여행지가 된 그곳은 한 때는 역무원 한 둘만 덩그러니 지키고 있던 그저 지나치는 역이었지만 이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어떤 경우는 급행열차는 정차하지도 않고 지나가는 간이역 같은 시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시간이 어쩌면 나중에 다시 돌아보면 되돌아가고 싶어서 안달하거나 그리워지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간이역과도 같은 시간은 곳곳에 있어도 무심코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이어령 선생은 언젠가 자신이 학위 공부다 칼럼이다 정신없는 나날을 보낼 때 꼬맹이 딸이 자신의 방문을 열고 "아빠 공부하는구나"하며 말을 붙이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부분 아빠 공부하니까 방해하지 말라는 식으로 답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런 시간을 돌이키며 자신의 일에만 몰입했던 일을 후회하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 당대의 지성은 후일 그 어린 딸이 결혼 후 이국에서 어려움에 처하고, 짧은 생을 자신보다 서둘러 마감하는 비보를 접하고 슬픔에 젖었습니다. 딸이 어린 시절 서재의 문을 열었을 때 무슨 세상을 구하는 공부를 한답시고 딸과 더 놀아주지 못했던 일을 돌아보며 회한의 눈물을 훔쳤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항상 곁에 있어서 몰랐던 이들의 소중함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라를 구하는 독립운동을 하더라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을 듯합니다.

뭔가를 읽고 쓰지 않았던 며칠, 그 비움의 시간은 어쩌면 채음으로 마음이 바쁜 시간보다 소중했습니다.


폴 발레리의 말은 이렇게 비틀어 보고 싶습니다. 나와 죽음 사이를 오로지 '일', 그것 만으로 채운다는 것은 인생의 큰 비극이 아닐까 합니다.


인생이란 캔버스를 꽉 채우려고 붓질을 하고 거기에 심지어 덧칠을 계속하기만 하다가도 때로는 미니멀리즘의 미덕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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