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게
있는 듯 없는 듯 늘 벗이 되어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때로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게 만든다. 음악의 응원으로 미뤄두었던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었다.
일을 끝내면 '듣는 음악'에서 '하는 음악'의 즐거움을 누려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내게 지옥의 신을 감동시킬 오르페우스의 기량이 있다면, 이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을 텐데... 이런 마음으로 가끔 먼지 묻은 악기도 열어본다. 애초의 내 연주는 관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연주자 혼자만을 위한 것이니까 기량에 대한 강박은 진작에 잊어버렸다.
예술이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는 근원적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미학 이론 중에서 가장 쉽게 인용되는 것이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것이다. 미술도 음악도 자연을 묘사한다. 그런데 음악은 자연에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으면 어떻게 표현할까. 비발디가 <4계> '여름'에서 천둥소리를 표현하지만, '겨울'의 쓸쓸함을 어떻게 표현했을까를 연상해본다. 인상주의 음악가 드뷔시는 아무런 소리가 없는 <달빛>을 어떻게 작곡했을까. 이런 면에서 루소는 음악이 회화예술을 능가한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회화는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할 수 없지만, 음악은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루소도 아마 로스코의 단순하면서도 감상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나 현대 추상미술의 난해한 세계를 보았다면 달라졌을디도 모르겠다.
모차르트도 모방에서 천재성을 꽃피웠다. 신동은 아빠의 손에 이끌려 전 유럽을 여행하면서 각 지역의 전통음악을 모방하는 과정을 거쳤다. 반 고흐도 초기에는 밀레의 그림을 모사하는 것으로 그의 기량을 연마했다. 피카소 또한 대가들을 모작하는 시기를 거쳤다.
어린 헤르만 헤세는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동서양의 사상을 공부하고 알을 깨는 정신적 성장을 거듭하며 문학가가 되었다. 그런 헤세는 "내가 무조건 경탄을 바치는 예술은 음악"이라고 하며 수준 높은 음악평론을 했다. 쇼펜하우어나 니체, 하이데거, 가다머 같은 이들도 음악을 무지 좋아했거나 미학 이론에 기여한 철학자들이다.
- 니체
미학이나 예술 이론가들에게 다소의 견해차는 있을 수 있어도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에서 태동했고, 인간의 마음을 무한히 위로하는 힘이 있기에 긴 생명력을 가진다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오선지에 채집되지 않은 물소리, 바람소리...
화가의 붓질로 캔버스에 들어오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
그래서 자연 속에서 이런 거대한 예술품을 감상하는 시간은 최고의 휴식으로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 키이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