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쇼펜하우어는 플루트 연주 실력이 뛰어났고, 성악이나 기타 레슨도 받으며 음악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쇼펜하우어를 존경한 바그너는 <의자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을 곁에 두고 탐독했다. 그것도 한 번 읽고 만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고독 속에 있을 때 이 책이 홀연히 찾아왔다고 하며 책을 여러 번 읽었다고 했다.
바그너의 주장은 자신의 지성을 과시하기 위한 말로 과장된 것일 수도 있겠다. 멋쟁이 신사로 유명했던 바그너는 딱딱한 책을 읽을 시간에 잘 차려입고 아마도 파티와 여성을 더 가까이했을 수도 있기에. 꽃미남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의 딸 코지마 리스트는 아버지의 친구 뻘이었던 바그너의 어떤 면모에 끌렸을까. 그 허세 많은 언변이나 지성미였을까. 피아니스트 코지마 아가씨가 바그너에게 빠진 것은 음악적으로 완성도 높은 바그너 오페라의 힘이었을까. 음악사에 남은 의문의 커플이다.
쇼펜하우어의 플루트 실력 이상을 뽐낸 이가 있다. 화가 앵그르의 바이올린 실력은 거의 프로 수준이었다. 앵그르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폄하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있어도 바이올린 솜씨를 탓하는 이를 보면 발끈할 정도였다고 한다. 앵그르는 '본캐'보다 '부캐'를 더 중시한 듯했다.
인류의 천재 아인슈타인은 집에 손님을 초대해서 연주를 즐기곤 했다. 결코 능숙하지 않은 솜씨이기에 손님의 귀를 괴롭힐 수도 있었지만 이를 감수하며 연주를 들으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때로는 몇 날 며칠 연구하다가 지쳤을 때 바이올린을 꺼내서 혼자만의 연주를 즐기기도 했다.
많은 이들은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색소폰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클린턴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색소폰과 은연중에 연결시키기에 클린턴에게는 하나의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한국 정치인 중에는 악기 연주와 가까운 이가 많지는 않았다. 아코디언 연주를 즐겼다는 고 김종필 전 총리, 한국 진보 정치의 자산으로 평가받았던 고 노회찬 의원의 첼로 연주가 회자된 적이 있다. 정치인들이 유세현장에서 악기를 연주하면 어떨까. 멋과 낭만까지는 아니더라도 강퍅한 정치언어 속에 지친 민심을 어루만지기 위해 소품 이리도 연주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런 멘트와 함께.
- 아우구스티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