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소설책을 보며
192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정을 등한시했고 집을 나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세월이 지나 진주여고 졸업반이 되었을 때 어렵게 아버지를 찾아가 대학 등록금 이야기를 꺼냈지만, 등록금 대신 뺨을 맞았다.
어머니의 사랑도 듬뿍 받지 못해서 "나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경멸,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런 극단적인 감정 속에서 고독을 만들었고 책과 더불어 공상의 세계를 쌓았다"고 회고했다. 극심한 가난은 어린 소녀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초등학교(당시의 국민학교) 때 수업료를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래도 인생은 물결 같은 것이라며 거칠게 삶을 헤쳐 나왔다.
전쟁과 가난을 이기며 악전고투의 연속인 삶 속에서도 원고지를 붙들고 늘어져 경남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녀는 나중에 죽음을 앞두고 회고한다. "다시 살라고 하면 저는 거부하겠습니다. 너무 고달픈 인생이었습니다"라고. 그녀가 남긴 시구로도 말한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토지>의 고 박경리 작가 이야기였습니다. 여성은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작가의 글은 어떤 경우 머리로 쓰기보다 몸으로 쓸 때 감동을 줍니다. 박경리는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책을 정리하다 먼지 묻은 책들이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박경리는 여러 단편 소설을 썼지만 <토지>의 작가로 기억됩니다. 단 한 작품만 남기고 떠난 작가도 있습니다. 마가렛 미첼은 세계적인 작가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단 한 작품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소설의 마지막 문구를 전설처럼 남기고. 이 문장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박경리 작가는 그 고달픈 삶을 견뎌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시련에 무뤂꾾지 않고 나아갈 때 어느덧 그 삶은 작품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