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를 권하며
필라테스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독일의 요제프 필라테스가 신체의 유연함을 강조하며 했던 이 말은 이제 건강한 몸을 바라는 세계인들이 금언으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스트레칭으로 뭉친 근육과 온몸을 풀어주는 일은 연구나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몸처럼 마음에도 필라테스가 필요하다. 당신과 유사한 사람들 틈에서 생각하고 항상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건 두뇌에 필라테스가 필요하다는 조짐이 아닐까.
당신의 두뇌가 유연함을 잃어버렸다면 과거의 생각이 만든 관성에 따라 기계적으로 행동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칼 포터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이런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한 바 있다. 온갖 검증되지 않은 지식들이 난무하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확증편향의 오류를 더욱 강화시킨다. 의견의 대립은 평행선을 긋기가 일수다.
극단의 유연함을 보여야 할 분야는 예술의 세계가 아닐까. 전위예술을 볼 때 어떤 경우 저건 좀 많이 나간 거
아니야 하고 고개를 돌릴 수 있다. 예술분야에서도 새로운 사조를 시작할 때 많은 경우는 전위예술 취급받았다. 서양 현대회화에서 피카소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진 앙리 마티스는 '야수파'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강렬한 색깔로 현실에서 보는 사물의 색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캔버스에 구현했다. 당시 평론가들은 좀 심하다고 마티스의 그림을 비아냥대기도 했다.
클림트의 에로티시즘은 또 어떤가. 클림트가 한 대학의 의뢰로 그렸던 <철학>, <의학>, <법학> 세 가지 테마의 그림은 대가를 못 받은 것은 물론이고 외설스럽다며 대학 당국과 화단의 비난을 받을 정도였다. 클림트는 다시는 공공미술이나 단체가 의뢰하는 그림은 안 그리겠다고 선언했다.
클림트가 추구한 고급스러운 에로티시즘은 서양미술의 보석이 되었고 많은 그림이 경매 사상 최고가 언저리를 형성할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지위를 얻었다. 클림트는 아마도 당시의 경직된 사회분위기에 저항할 수 있게 두뇌의 필라테스 운동을 꾸준히 했을 것이다.
정치의 계절에는 같은 현상을 두고도 극단의 해석이 공존한다. 개인이든 언론사든 정신의 필라테스 운동을 통해 밸런스를 추구했으면 한다. 요제프 필라테스가 몸에 대해 했던 말은 이제 이렇게 바꿔서 정신에 적용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