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갤러리

by 호림

다양한 작품들이 빼곡히 호텔방을 채우고 있었다. 많은 화가들이나 관계자들이 그림을 열심히 설명하고 눈에 띄는 그림을 찾는 갤러리스트들과 그림을 둘러보려는 시민들로 호텔이 빼곡하다. 호텔 룸을 활용한 전시도 몇 년 새 아트 페어의 한 형식으로 시선을 끌고 있다.


매력적인 그림, 스토리가 담긴 인기 있는 그림의 비밀은 무엇일까. 시대마다 또 지역적으로도 특정 유파가 흐름을 좌우하기도 했다. NFT처럼 저장과 교환수단도 진화해 새로운 거래기법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예술가가 작품에 바친 시간과 노고의 순수함은 그 가치를 쉽게 매기기 힘든 속성이 있겠지만 시장 속으로 나와서 평가를 받고 인정받아야만 하는 것도 상품으로써의 예술작품이 마주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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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는 금속 세공사 아버지가 사망하고 가난의 굴레 속에서도 꿋꿋이 화단에 명함을 내밀었지만 냉랭했다. 자신의 화풍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류 화단에 반기를 든 클림트는 1897년에 빈 미술가협회를 탈퇴했다. 자신만의 길을 새롭게 연 것이다.


빈 분리파를 만들어 자신이 회장이 되어 일군의 화가들과 자신들만의 혁신적인 그림을 잇달아 선보였다. 후일 오스트리아 황제가 전시회에 다녀가면서 입소문을 타고 빈 분리파의 입지는 확고해졌고 에곤 살레와 코코슈카 같은 신진 예술가들도 빈 분리파의 이름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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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는 자신의 작업 동료이기도 했던 친동생이 죽었을 때 커다란 슬픔 속에서 운명에 쉽게 휩쓸려가는 나약한 인간의 육체에 주목한다. 많은 여인의 인체를 그만의 시각으로 그렸다. 클림트는 아버지와 동생, 육친을 잇달라 잃으며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뀌는 커다란 아픔에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를 당당하게 일궈가는 계기로 삼았다. 어쩌면 클림트의 화려한 황금색 작품은 처절한 가난과 슬픔을 이긴 한 예술가에 대한 세월의 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감동은 단번에 번쩍이는 발상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못의 <수련> 그림만 250여 점을 집요하게 그리며 빛의 변화가 주는 사물의 다양한 모습을 캔버스에 구현한 화가가 있었다. 빛에 비친 사물의 순간적인 인상을 평생에 걸쳐 파고든 인상파의 거목 클로드 모네의 생을 바친 헌신과 집요함도 예술가의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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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없는 것이 예술세계다. 재벌가 정도의 재력으로 그들만의 견고한 리그에서 벌어지는 거래질서도 있고

소소한 소품으로 컬렉팅의 재미를 누리는 시민들도 있다. 갤러리의 문턱이 낮아져 젊은 컬렉터들이 소품을 구매하는 발길도 많아졌다.


아마 지금도 어떤 작업실에서 클림트나 모네만큼이나 처절하게 자신만의 예술혼을 작품에 쏟아붓는 작가들이 있을 것이다. 그분들이 만든 가치를 우리가 쉽게 흥정하고 '0'을 몇 개 더 붙이거나 빼면서 가격으로 손쉽게 평가하는 것이 예술혼에 대한 신성모독일까. 거래질서 속에 들어온 예술은 포장되어 거래되고 예술가들도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든 알려서 호구책을 마련하고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에너지를 세상 속에서 얻어야 하는 것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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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가는 사실상 스스로에게 독방 종신형을 선고했음을 인정하고

그 불변의 사실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피터 스트라우브


스트라우브의 말은 글 쓰는 작가만이 아니라 고독을 기꺼이 감내하는 작가 정신 측면에서 화가에게도 해당될지 모른다. 주말에 본 특별한 갤러리 나들이가 예술가와 예술가의 자리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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