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의 거인 괴테를 바라보는 길가에서
남산순환 도로를 지나다
주한 괴테문화원을 보며 든 생각은
왜 독일 문화의 대표선수는
괴테일까 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도 있고,
베토벤도 있는데...
10대 시절
알을 깨는고통을 앓을 때
<데미안>이 있었다.
'운명'처럼 귓가에 다가온 선율이
오랫동안 영혼을 위로해준 악성,
클래식계 불멸의 '영웅'도
세계인들의 가슴에 건재하다.
독일문학과 예술의
풍부한 토양 중에서
그 정수를 꼽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독문학도들만의 고전이 아닌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의 하나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작가가 괴테다.
독일어 제목은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다.
학자에 따라서는
원어에 충실한 제목으로
<젊은 베르터의 고통>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괴테의 삶은 어땠을까?
자전적인 소설이기에
괴테 또한 사랑의 열병을 앓다가
단명하거나
자살한 것은 아닐까?
무려 50년에 걸쳐
혼을 담아 집필한 역작
<빌헬름 마이스터>나
<파우스트> 같은
괴테의 역작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소설이 발표되자마자
전 유럽이 베르테르 열병을 앓았다.
당시 주인공을 따라
모방 자살이 잇따랐을 때
괴테는 책의 2쇄에
이런 점잖은 문구를 넣어
젊은이들의 자살을 막고자 했다.
독문학자 홍진호(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괴테의 당부를 의역했다.
모든 젊은이들은
베르터처럼 정열적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랑은
늘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너무나도 정열적이지만,
이루어질 수 없다면
그 사랑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독자들의 사랑스러운 영혼이
베르터를 이해해주고
그를 위로해 눈물을 흘려주기에
베르터가 겪어야만 했던
쓰디쓴 고통은
더 이상 굴욕이 아니다.
그러니 세상을 떠난 그의 넋이
당신에게 손짓하며 말한다.
나처럼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말고
남자답게 이겨내라고!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홍지호 저, P. 108-109
1774년 괴테가 25세에 발표한
이 작품은
자전적 경험을 담은 소설이다.
괴테도 사랑의 열병을
심하게 앓았던 것이다.
이후 괴테는 1975년
스물여섯의 나이로
바이마르 공국에서 왕의 친구 겸
정치가, 행정가로
1832년 사망할 때까지
60여 년을 보냈다.
어떤 면에서 괴테는
전업작가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어떤 전업작가보다
놀라운 성취를 해냈다.
만년의 역작 <파우스트> 하나만
보더라도.
바이마르 공국에서
왕을 보좌하는
지식인이자 행정가였지만,
작가로서의 치열함을
결코 잃지 았았던 괴테는
프리드리히 쉴러와
문학사에 남을 우정으로
서로의 작품 활동에 자극제가 되었다.
괴테는 열 살 어린 친구
쉴러가 46세에 죽었을 때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실의에 빠졌다가
힘겹게 극복하고 새 삶을 시작했다.
궁정에서 일하며
연극에도 직접 출연해 배우 역할을 했던
괴테의 모습을 본 궁정 의사는
이렇게 그의 풍모를 묘사했다.
지적인 아름다움과
외적인 아름다움이
이렇게 완벽한 조화를 이룬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세상의 남성들이 시샘할 정도로
지성과 외모가
이렇게 조화를 이룬 경우라니.
그런 경우는
바이런 하나로 족하다고 하며
신은 정말이지
공정하지 못하다고 푸념할
남성들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괴테가 당시로서는 장수해
82세까지 살면서 이뤘던
엄청난 문학적 성취는
아직껏 세계인들의 가슴을 울린다.
왜 세계 각지의 독일문화원은
'괴테 인스티튜트'인지
의문에 대한 답 또한 쉽게 풀린다.
한국의 괴테 문화원은
서울 용산구 소월로에 있었다.
김소월 시인도
한국에서 사랑받는 시인이었다.
한국어의 영토가 더 넓어진다면
세계 각지에 있는
한국문화원의 이름은
아마도 힌국작가의 이름을 따서
불릴 수도 있겠다.
셰익스피어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영국의 자산인 것처럼.
괴테는 어느 국가도 쉬이
그 가치를 넘볼 수 없는
독일의 자산이기에.
어쩌면 한갓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의 슬픔은
엄청난 문화적 자산이 되어
독일의 기쁨으로 살아남았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