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대통령은 그와 만난 후 "저는 그를 만나 훌륭하고 건전하지만 신랄한 충고를 들었다"고 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그의 책을 몹시 좋아했다고 고백했다.
이쯤 되면 하바드를 나온 어느 유명한 세계적인 석학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는 이였다. "탁아소에서 20년, 빈민촌에서 20년, 부두에서 25년"이라고 스스로의 삶을 회고했다.
책을 읽고 쓰는 것 외에는 평생 생계를 위한 노동을 직업으로 삼았다. 처참한 삶의 끝자락에서 자살까지 생각한 젊은이가 미국의 지성으로 우뚝 섰다. 부두 노동자이자 사회사상가로 예리한 필력을 뽐냈던 미국의 지성 에릭 호퍼의 이야기다.
그의 말은 정제되지 않았지만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힘이 있다. 호퍼는 단체 행동에 휩쓸리는 개인에 대해 독립성을 포기한 결과라고 하고 이렇게 말한다.
그러한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인생에 의미와 목적을 가져다줄 수 있다. 따라서 자기 인생의 무의미함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성스러운 신념에 자신을 바치거나 광적인 비애를 키워나감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대중운동은 그 두 가지를 무제한적으로 충족시킨다.
호퍼는 이런 냉소도 덧붙인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일에 신경을 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럴 가치가 있을 때 하는 이야기다. 그럴 가치가 없을 때, 사람들은 남의 일에 신경을 쓰면서 자신의 무의미한 인생을 외면한다.
호퍼는 어릴 때 책을 좋아했지만 가난했던 홀아버지 밑에서 살다가 이내 단명한 아버지의 품에서 나왔다. 소년 시절을 가난과 고독의 굴레 속에서 보냈고, 이후 노동판을 전전하며 몽테뉴의 <수상록>이며 온갖 책을 무지막지하게 읽었다.
이 과정에서 학교에서 결코 가르쳐줄 수 없는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 평생의 자산이 되었다. 에릭 호퍼의 삶에 연민의 시선을 보내게 되지만, 호퍼는 오히려 틀에 박힌 삶과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이를 연민의 시선으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이 부두 노동자의 이야기에 주말 밤이 깊어 갔다.
월요일, 노동이 기다리는 현장이 우리를 맞을 것이다. 호퍼가 거의 종신토록 노동에 종사한 캘리포니아의 어느 부두 하역장은 어떤 이에겐 학교일 수도 복잡한 메트로의 어느 사업장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각자의 부두에서 호퍼의 삶을 들여다보며 예술이 되거나 아무런 울림이 없는 소음과도 같은 삶, 그 중간 어떤 지점이 될 인생을 그리게 될 캔버스를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