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에스테우스의 현재와 미래

by 호림

인간이 굶주려 죽기보다 과식과 비만, 질병보다 노화로 죽는 경우가 많아진 21세기입니다. 코로나 시대가 이런 주장을 잠깐 멈칫하게 하지만요. 이 호모 사피엔스는 미세하지만 그동안 부단히 진화해왔고 앞으로도 진화해갈 것입니다.

특허청이 2018년 발표한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는 세계 10 발명품 조사에서 1위는 다소 의외일 수 있지만 냉장고였습니다. 2위는 인터넷, 3위 컴퓨터, 4위 세탁기, 5위 텔레비전 순이었습니다. 2위+3위+5위를 하나로 묶으면 뭐가 될까요. 짐작하셨겠지만 애지중지 한시도 떨어지면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물건이 스마트폰입니다.

이 스마트폰을 벗어나 살 수 없는 인간을 ‘포노 사피엔스’로 명명하는 과학자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일상에서 친밀도가 웬만하지 않은 경우 전화를 거는 경우보다 문자나 카톡 메시지로 의견을 타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접 전화를 걸지 못하는 것을 ‘콜 포비아’라고도 하는데 이런 콜 포비아는 젊은 층일수록 많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내 경우는 만나거나 음성으로 생생하게 소통하지 않을 경우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콜 포비아’로 불완전하게

소통할 경우 오해가 쌓일 수 있다는 생각이지만 ‘포노 사피엔스’로 진화가 덜 된 경우이겠지요. 우리 사피엔스들은 스스로를 정의하는 개념을 다양하게 발전시켜왔습니다.

우리 인간을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이라며 학창 시절에 줄기차게 배웠습니다. 거기에서 파생되거나 진일보한 개념들이 줄줄이 등장하지요. 역시 학자들은 종합하고 개념화해서 하나의 용어로 이론을 대표하는 것이 있어야 직성이 플리는 법이겠죠. ‘놀이하는 인간’의 개념을 주장한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 1872~1945)는 1938년에 출간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현대에 와서 인간을 ‘만드는 인간(Homo Faber, Man of the Maker)’으로 지칭하기도 합니다. 파베르(Faber)가 사피엔스(Sapiens)보다는 더 구체적일 수 있지만 다른 많은 동물들도 도구를 만든다는 것을 감안하면 인간은 좀 더 고등한 도구를 만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다.

로제 카이와(Roger Cailois, 1913~1978)는 1958년에 출간한 『놀이와 인간(Les jeux et les hommes)』에서 호이징하가 놀이 분류의 기본 범주로 ‘경쟁’과 ‘모의’를 제시한 것에 ‘운’과 ‘현기증’이라는 두 가지 범주를 추가했습니다. ‘운’의 대표적 놀이는 도박, ‘현기증’의 대표적 놀이는 회전·낙하운동과 공중서커스 같은 것입니다.

이제 인간은 ‘포노 사피엔스’에서 신을 닮으려는 수준의 ‘호모 데우스’로 진화해가는 것일까요.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요. 70kg 정도의 성인 몸은 1.5kg 정도의 뇌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뇌는 물질적으로는 습기를 머금은 작은 고깃덩어리입니다.

이 1.5kg이 인류의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호모 사피엔스, 파베르, 루덴스, 데우스로 계속 확장한 것도 엄밀하게는 1.5kg의 진화입니다. 이런 모든 진화를 가능하게 한 것도 결국은 사피엔스, 즉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했기에 호모 사피엔스라는 용어의 보편성은 인정하고 다른 사피엔스의 특질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사피엔스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일까요. 고즈넉한 풍경화, 르느와르나 세잔이 그린 평온한 인물과 풍경, 피카소가 그린 다소 뒤틀려있지만 뭔가를 새롭게 추구한 추상 계열의 작품,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이런 작품들은 모두 인간이 어떤 미적 가치를 찾는다는 증거들입니다. 베토벤, 모차르트의 음악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호모 아티쿠스, 호모 뮤지쿠스, 호모 커뮤니쿠스 이런 용어들을 떠올립니다. 여기에 예술이라는 개념은 루덴스에 포괄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확장적이라 미를 추구하는 마음 전부를 포괄해 호모 에스테우스 라면 어떨까 합니다.


미학이라는 용어도 라틴어 계열로 ‘Aesthetics’로 표기되는데 철학의 분과학문입니다. 미학과를 설치한 학교가 한국에서는 국립 서울대학교 외에는 없을 정도로 전문 연구자는 드문 편이라 하겠습니다. 호모 에스테우스의 현재와 미래를 주로 얘기하면서 브런치 밥상에 올려볼까 합니다. 과거의 연구들을 검색해보니 유사하게 '호모 에스테티쿠스' 개념이 있더군요.

좀 더 세련된 디자인, 좀 더 아름다운 음악과 미술, 새롭고 아방가르드적인 것을 찾는 마음, 이런 것들을 호모 에스테우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그 증거는 무수히 많습니다.


단벌신사인 나도 어떤 셔츠를 받쳐 입을지 고민하는 에스테우스임에 틀림없습니다. 갤러리에서 지인의 초대전이 있다면 웬만하면 가려고 하거나 공연, 영화, 음악 감상의 취향이 제법 까다로운 것도 이런 호모 에스테우스적인 면이겠지요.

아침 산책길 나비 한 마리의 무게를 견디며 버들강아지가 흔들리고 있더군요. 이런 것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마음도 호모 에스테우스적인 것이 아닐까요.

글을 마칠 즈음 누군가 아프다는 안타까운 연락을 받았습니다. 내가 아플 정도의 고통이 전해지는 소식이기에 인간은 '공감하는 인간', 즉 호모 엠파티쿠스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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