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키이츠는 ‘미는 곧 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때로 성적으로 결부돼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또 아름다운 여성은 그 아름다움으로 많은 것들을 얻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움 때문에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거나 불행에 빠지기도 한다.
미모로 역사를 바꾼 대표적인 인물이 클레오파트라다. 역사교과서에서 또 영화로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는 무수히 보고 들었을 것이다.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만 낮았어도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그 유명한 말을 했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영웅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와의 그 유명한 사랑때문에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는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남자를 홀리는 치명적인 팜므파탈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영속하는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없다면 비극의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역사 속 인간들의 운명이었다.
클레오파트라 7세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대체로 냉혹하다. 그러나 그녀가 이집트 독립을 갈망하고 대제국의 꿈을 꾼 여장부라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어쨌든 그녀의 꿈은 결국 자살로 허망하게 끝난다. 안토니우스의 죽음과 이집트로 진격해 들어온 옥타비아누스의 군대의 위풍당당함을 본 순간 그녀의 꿈은 좌절되었다.
결국 클레오파트라 7세는 자살을 택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옥타비아누스의 포로로 로마 시내 한가운데서 능지처참에 준하는 수모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옷과 보석으로 치장한 후 꽃 속에 누운 클레오파트라 7세는 독뱀에 가슴을 물려 죽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귀도카나치의 1658년작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아름다움에 눈먼 고대 제왕들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가까운 현대에도 마타하리 같은 스파이, 한국의 4성 장군을 울린 로비스트 사례도 있다. 대체로 극한의 아름다움에는 독이 들어있었고 거기에 눈이 멀었던 인간의 운명은 비극을 낳았다.
아름다움이라는 무기로 한 시대를 풍미하다 결국 자기 꾀에 빠지고 팜므파탈형 미의 대명사로 역사에 남은 클레오파트라는 '호모 에스테우스'의 증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