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예술의 경지로 만든 사람들은 그 자체를 즐기며 몰입해 영광의 월계관이 부수적으로 따라와도 향유하고 안주하지 않는다.
작은 성취를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더 큰 몰입에 곧장 뛰어든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 나중에 인정받고 신화가 되는 것은 차후의 문제였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전기는 벽돌책이지만 쉽게 읽힌다. 경영의 스킬을 담은 책만으로 읽히지는 않았다. 아이작슨은 잡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백하게 그려냈다. 연애 상대 여성에게는 불성실하고 직원들에게 툭하면 화를 내는 결함투성이의 모습도 잡스의 일부다. 흔히 보는 오너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그런 류의 전기가 아니다.
출간 당시에 사서 금세 읽었지만 잡스가 죽고 그 해에 책이 나온 지 1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책 정리를 하다 다시 집어 들었다. 잡스가 펩시의 마케팅 책임자 존 스컬리를 스카우트할 때 한 말은 다시 봐도 예술이었다.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붙잡고 싶습니까?”
잡스는 광고를 직접 챙긴 CEO로 또 터틀넥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프리젠터로 잘 알려졌다. 광고인 리 클라우를 들들 볶으면서 원하는 카피를 뽑아내는 장면도 인상 깊다. 다른 것을 생각하라. Think different. 지금까지도 애플의 모토가 된 문장이다. 문법적으로 ‘differently’ (이경우는 다른 식으로 생각하라는 의미가 되겠지만) 나 ‘difference’가 적당하겠으나 그 미묘한 뉘앙스를 살리자고 잡스는 ‘different’를 고집한다.
잡스는 광고인들과 치열한 난상토론 끝에 카피를 얻어내고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해한다. 이어서 나온 60초 광고 문구는 한 편의 시가 따로 없을 정도다.
미친 자들을 위해 축배를. 부적응자들. 반항아들. 사고뭉치들. 네모난 구멍에 박힌 둥근 말뚝 같은 이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라들. 그들은 규칙을 싫어합니다. 또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은 그들의 말을 인용할 수 있고,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또는 그들을 찬양하거나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그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천재로 봅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자들....... 바로 그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일에 대해 편집증적으로 집착하고 자신의 일을 예술로 만들고자 했던 괴짜는 췌장암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Stay hungry stay foolish” 정신을 견지해 병실에서도 애플 스토어의 매장 디자인을 고민할 정도였다. 애플 스토어는 수익 면에서 전체의 15% 정도였을 뿐이지만 상징성이나 애플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면에서는 애플에 엄청난 성공을 안겨주었다.
잡스는 애플 스토어를 만들기 위해 수개월 동안 매달렸다. 매장 디자인 전문가들과 같이 살다시피 하면서 화를 버럭버럭 내며 때로는 한 달 동안 열심히 만든 시안 전체를 뒤집어엎으면서 편집증적으로 집착한 것이다. 이런 노력으로 잡스는 세간의 냉소를 뒤집고 보란 듯이 애플의 브랜드를 세련되고 고급 스런 이미지로 만들어냈다.
고객들이 밤새 줄을 서서 신규 매장 오픈과 새 제품을 기다리는 진풍경이 세계 곳곳에서 연출된 것이다. 기존의 것과는 다른 브랜드의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집요함이 만들어낸 괴짜 편집증 환자의 승리이기도 했다.
한국의 이건희나 일본의 이나모리 가즈오, 마쓰시다 같은 이들도 완벽을 추구한 경영인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일종의 경영사상가라 할 수 있다. 적당주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거인들은 많다. 이런 면에서 상징적인 경영학자이자 경영사상가가 피커 드러커다.
드러커는 어느 날 베르디의 오페라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신진학자로서 적당주의의 삶을 이어온 그에게 베르디의 오페라가 보여준 완성도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충격이었다. 완전을 향한 학자로서의 고된 행로를 시작한 것이다. 예술은 밥벌이와 가장 멀리 있는 듯하지만, 알게 모르게 밥벌이의 상징과도 같은 경영을 지배하기도 한다. 예술의 힘이 위대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