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커다란 원에 칸을 나눠 자유시간, 숙제, TV 시청, 운동 같은 할당을 두고 고민한 경험이 있다.
시간을 정복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것에 가치를 발견할지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구소련의 학자 류비셰프는 82세로 사망할 때까지 매일의 일과를 시간 단위 분단위까지 정확히 기록한 학자다. 그가 시간을 대한 태도를 보면 삶에 경건하지 않을 수 없다
류비셰프가 얼마나 용감하게 시간을 맞섰는지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몸으로 시간을 느꼈다. 그리고 늘 요동치며 흘러가는 '현재'를 관리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는 시시각각 줄어드는 남은 생애를 정확히 헤아리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는 단 한순간도 헛되이 놓쳐버리지 않도록 온 정신을 집중해 지나가는 시간을 잡아챘고 최대한 많은 일을 해냈다. 마치 일용한 양식을 대하듯 그는 시간을 경건하게 여겼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로닌 저, p.166
생전에 70권의 학술서적, 총 1만 2,500여 장에 이르는 논문과 연구자료를 남겼다. 생물학자였고 다양한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철학과 역사, 문학을 넘나든 해박한 논리도 많은 이들을 압도했다. 열정 속에 모범적으로 살았고 수많은 독자와 팬들의 편지가 쏟아지기도 한 학자이자 작가 류비셰프의 사간에 대한 경건함은 존중받아야 하겠다. 그렇지만 더할 나위 없는 모범적 태도와 웬만한 작가보다 많은 작품을 읽고 방대한 양을 써냈던 그의 삶에 왠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러시아 태생의 작가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로닌은 조심스레 말한다.
아마도 '여백의 미'를 상실한 꽉 찬 삶이 숨이 막혀서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가치를 보는 시각이 제각각이기에 류비셰프가 보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불멍'과 '물멍'을 위한 30분이나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며 한 잔 하는 시간을 남겨두는 것도 시간을 지배하는 지혜가 아닐까.
확실한 것은 삶의 물리적인 길이만큼 그 밀도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자유시간'에 군침을 흘리고 동그란 일과표에 넓고 큼지막하게 그려 넣고 싶었던 개구쟁이 시절의 욕망을 어떻게 정복할 것인지 이것 또한 영원한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