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철저히

역설의 언어가 품은 묘미

by 호림

주위의 후광에 가려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이들은 오노 요코를

전위 미술 작가로 보다는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아내로 기억한다

가장 유명한 무명작가가

오노 요코였다.


일견 모순된 역설의 언어는

때로 횡간을 읽는 재미를 준다.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이 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는데

얼핏 모순되지만

함축된 의미는 절묘하다.


크고 작은 조직에서

조급하게 자신의 기량을 뽐내려

서두르는 많은 이들을 본다.

그렇지만 기본기나

인격이 부족한 상태에서

급발진을 시도하다

처참한 사고를 내는 경우를 본다.

공직의 경우

개인의 일탈은

국가적 손실을 가져오기도 한다.


아우구스투스의 '천천히'에는

기본을 탄탄히 하라는 의미가

들어있으리라 짐작한다.

언뜻 초등학생의 학예회 그림 같은

삐뚤빼뚤한 피카소의 그림들은

입체파의 큰 줄기가 되었다.

입체파 계열의 피카소 작품들도

초기 그림에서 보여준 탄탄하고

정교한 데생 솜씨에서 진화했다.


피카소의 기본기는

미술교사인 아버지에게서

조기교육을 받았던 덕이기도 하다.

모차르트 역시

천재성을 발휘하기 위해

음악가인 아버지에게서

혹독한 기초교육을 받았다.

사람도 때로 수백 년을 살 것처럼

조는 듯이 더 이상 게으를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움직일 때가 있다.

그러다 때로 매의 눈으로

기회를 포착하고

잽싸게 움직이는 면모도 필요하다.

사막의 사자도

조는 듯 어슬렁거리지만

먹잇감이 나타나면 온 힘을 다해 전력 질주한다.


어떤 비유를 해도

아우구스투스의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의

절묘한 의미를 설명하긴 부족하다.


아마도 조직에서

상사나 선임자가 후배에게

"적당히 철저히" 하라고 지시하면,

애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자락 깔아주는

언어의 묘미를 이해하는 후배라면

아마도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는 말보다

더 강한 압박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작품이

그저 그런 낙서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의 작가가
평생 한 작품만

남기려는 것은 아니기에

완성도는 높여야 하지만

언제나 다음 작품을 위한

시간 안배가 필요하다.

그것이 그림이든 글이든 작곡이든.

머리를 쥐어뜯으며

밤을 지새울 작가들에게

"적당히 철저히" 하라고

전해주고 싶다.


상호 모순적인 단어의 배치로

극적인 메시지 전달 효과를 얻는 것도

커뮤니케이션을 예술의 경지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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