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손아귀에 넣은 당나라 현종은 음주가무를 즐기다 양옥환이 춤추는 모습에 마음을 뺏긴다. 하지만 무혜비를 통해 그녀가 왕자와 혼인을 약속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현종은 제왕의 권력으로 며느리 옥환에게 구애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인다. 양옥환은 친절한 시어머니 무혜비에게 궁중 예절을 배우고, 왕자와 함께 신혼을 보내며 마침내 아기를 잉태한다. 그러던 와중, 배신자로 낙인찍힌 왕후 무혜비가 왕의 앞에서 자결하는 일이 벌어지고, 왕자도 아버지 현종이 자신의 아내 양옥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왕자는 양옥환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지우는 약을 먹이고 국경으로 도망가 버린다. 지아비에게 버림받은 충격으로 양옥환은 결혼하자는 현종의 총애를 마다하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왕조현 주연의 영화 <양귀비>의 줄거리다. 역사를 보면 산으로 들어가 신분을 세탁하기 위함이었는지 양옥환은 도교에 입문하고 다시 입궐해 현종 곁으로 온다. 당 현종도 한 때는 유능한 군주였지만 양귀비에 빠지면서 양귀비 친인척의 무리한 발탁과 중용으로 민심을 잃고 나중에는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양귀비는 성난 민심에 의해 살해되고 아들의 부인을 탐한 패륜왕 현종은 백성의 시선을 피해 삶을 연명하며 양귀비를 그리며 살다 죽었다. 양귀비는 몰래 일본에 도망가 이후 후손을 이어갔다는 야사도 있다.
'안녹산의 난' 같은 시험 출제 예상 이슈와 함께 양귀비 일가가 국정을 어지럽힌 이야기는 세계사 시간에 졸음을 좇아주는 선생님들의 단골 메뉴라 귀를 쫑긋 했던 기억이 있다. 인간을 파멸시키는 마약의 재료로 아름다운 양귀비꽃이 있다. 외모가 너무 지나칠 정도로 아름다우면 독이 있다는 이야기의 상징으로 삶의 경계로 삼을 것을 주문하는 어르신의 훈계에는 양귀비가 등장한다.
누구나 초면에는 그 삶의 이력을 잘 모르기에 처음엔 스펙을 보고 외모를 본다. 마음을 읽는 눈을 가지려면 시간에 필요하다. 특히나 어릴수록 외모에 집착한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대개는 지혜가 늘면서 일상의 시력은 감퇴될지 몰라도 사람을 보는 마음의 눈은 대개 더 밝아진다.
SNS를 도배하는 화려한 외모의 비주얼도 자랑일 수 있고, 직업적으로 모델이나 배우들은 외모가 중요한 경쟁력의 하나다. 로버트 레드포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배우들이 성형으로 볼이 빵빵해졌면 어색할 것이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말대로 성형 대신 그 나이에 맞는 배역을 찾으면 그만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대스타가 아닌 생계형 배우나 일반인들의 마음이 다 같을까.
주름이 늘어나는 걸 한탄할 시간에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주름을 감추지 않았던 오드리 헵번, 성형중독으로 젊음을 찾으려는 모습이 애처로웠던 리즈 테일러의 말년이 떠오른다. 팬들이 어떤 이름을 아름답게 기억할지는 자명하다.
미의 절대성은 없다.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가 현대 한국에 환생한다면 뚱뚱하다거나 코가 성형이 필요하다고 진단할지 모른다. 이어령 선생은 어느 주례사에서 총천연색의 사진으로 시작한 청춘의 시간들이 흑백으로 변해가는 것이 결혼이라고 했다. '화무십일홍'의 지혜를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것은 성형수술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얼굴의 주름을 잊게 만들 정도의 지성미를 가다듬는 일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10점짜리 행복을 한 달에 한 번 느끼는 것보다 2, 3점짜리 행복을 매일이나 매주 느끼는 것이 더 정신건강에 좋을 수가 있다고 한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일 수 있다. 성형수술은 단박에 100점짜리 행복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것일 수 있고, 일정 부분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매일 지성을 가다듬는 일은 0.1점짜리 행복을 쌓아가는 일이 아닐까. 꾸준히 쌓으면 100점을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100점이 안되어도 그 과정에 깃든 정신의 충만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팜므파탈에 흔들리는 호모 에스테우스의 증거는 넘친다. 그 이면에는 일신의 외모를 돌보고 영달을 도모하는 데는 소홀했지만, 영원히 살아남을 예술의 아름다움을 위해 인생을 바친 예술가들의 넘치는 땀이 있었기에 사피엔스의 문명은 이어져왔다.
지성의 양귀비 꽃 씨앗을 매일 뿌리고 가꾸는 일에도 아름다운 용모를 가꾸는 일만큼 시간을 할애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