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고독

산악계의 거인과 한 흑인 영감을 생각하며

by 호림

가끔 휴일이면 단순하고 고독한 세계에 들어서기 위해 종교인이 경전을 들고 종교시설을 찾는것처럼 책과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내 고독의 작업 공간으로 들어선다. 거기엔 2~3백 년 전 사람들의 숨결만 전해진다. 베토벤 모차르트가 오선지에 썼던 선율이 들릴 뿐이다.

관계 속에서 북적거리는 시간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원하지 않은 만남도 있어서 감정이 소모되는 경우도 많다. 고독으로 충전된 나만의 시간이 없다면 그런 시간을 견디기 힘들지도 모른다.


어제는 청량한 가을날의 공기를 마시러 작은 산을 올랐다. 산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 작은 산도 홀로 가는 것이 외롭고 쓸쓸한 데 홀로 에베레스트를 걸어갔던 산악인은 어땠을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산악인으로는 단연 라인홀트 메스너가 꼽힌다. 타임지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을 뽑을 때 많은 이들이 메스너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결과는 아인슈타인이었다. 인간의 머리로 가장 위대한 성취를 이룬 인물에게 명예를 주었지만 인간의 육체로 극한을 견디는 의지를 보여준 메스너 또한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1970년부터 1986년까지 16년에 걸쳐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8천 미터급 14좌를 완등 했고, 1978년에는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이후에도 세르파 없이 8천 미터급을 단독 등정하고 남극 탐험, 고비사막 횡단 같은 극한의 도전을 이어왔다. 산악인으로 경험을 저술하고 강연을 활발히 해온 메스너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20210822_110755.jpg

나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마라. 그 대신 산으로 가라고 말하겠다.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많은 답을 기대하는데, 산은 모든 사람에 대한 답을 갖고 있다. 그곳에 우리의 물음에 대한 새로운 해답이 있다.


그런 메스너도 친동생 귄터 메스너를 동반 등반에서 낭가파르밧의 험준한 눈보라에 묻고 어둠과 추위, 혈육을 잃은 슬픔을 견뎠다. 30년이 지난 후에야 그는 동생을 잃은 아픔에 대해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낭가파르밧, 잊을 수 없는 동생을 위하여>라는 책 서문에서 이렇게 애끓는 고통을 절제된 문장에 실었다.

그때 나는 일주일 내내 혼자였다. 고통스러웠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가운데, 몸은 점점 차가워지고 의식은 사라져 가고 있었다. 마침내 인간에게로 돌아왔을 때, 나는 몹시 굶주리고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구조되리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내 뒤 구름 위로 우뚝 솟은 낭가파르밧이 보였다. 그 벌거벗은 산은 내 아우와 함께 저 먼 곳에 있는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인더스 계곡을 바라보며 아련한 그리움과 고통을 느꼈다. 나는 아직도 그곳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산악계의 영웅으로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에서도 메스너는 내면의 깊은 고독과 죄의식 속에 낭가파르밧의 추위와 어둠을 쉬이 잊거나, 죽은 동생을 가슴속에 묻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있는 공간은 메스너가 견딘 에베레스트의 추위와 크레바스도 없는 그래서 아무런 위험이 없는 공간이다. 책들만 말없이 응시하는 안전한 공간에서 감히 메스너의 고독을 생각해 보았다.


27년. 남자라면 성인이 되고 군대도 다녀오고 사회에 진출할 정도의 시간이다. 만델라에게는 긴 수감생활이라는 깜깜한 터널이었다. 27년이라는 긴 고독의 터널에서 만델라는 정적에 대한 원한과 자포자기로 망가지지 않았다. 그 시간을 엄청난 사색과 통찰의 시간으로 보냈다. 그는 출감 이후 남아공 인종차별에 종지부를 찍은 대화합의 지도자로 세계사에 이름을 올렸다. 왜 20세기 최고 지도자를 논할 때 만델라를 뺄 수 없는지는 한 흑인 영감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내가 왜 나를 27년간 감옥에 넣어두고 박해한 세력과 화해했는지(그것도 최고의 권좌에서) 물을지도 모릅니다. 그 이전에 묻겠습니다. 당신들이 누리는 그 무한한 자유의 가치를 아십니까? 나는 이 좁은 철창 안에서 고독이 아니면 더 지독한 고독만이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27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을 견디지 않은 정신이 결코 쉽게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 안락하고 짧은 고독에 대해 매스너와 만델라 앞에서 감히 '고독'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