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고 부족함 없는 사랑, 정돈된 삶보다는 때로는 혼돈과 무질서, 아련한 메아리처럼 다가오는 삶이 더 큰 울림을 주는 경우가 있다.
고인이 된 피천득 선생의 수필 <인연> 이 아름다웠던 것은 끝내 아사코와의 애틋한 느낌이 사랑과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세 번의 짧은 만남으로만 끝났기 때문에 교과서에 명수필로 실리지 않았을까. 피천득 선생은 이 글을 환갑을 넘긴 63세에 젊은 시절을 회고하며 담백한 문체에 실어서 썼다.
'인연'이란 것이 묘하다고 느끼면서도 덤덤하게 그런가 보다 하고 읽었던 소년이 세상을 조금 알만한 나이가 되어 다시 수필을 들쳐본다. 당시로서는 노년에 들어섰을 피천득 선생의 복잡 미묘한 마음이 읽힌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 소설과 영화로 알려진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정서도 얼핏 보인다.
단테의 '베아트리체'는 보통명사가 될 정도로 남성들이 연민과 사랑을 쏟아붓는 대상에 대한 상징어가 되었다.
단테는 자신의 아내가 아닌, 한 번도 같이하지 못하고 끝나버린 한 여성에 대한 불타는 사랑을 원동력으로 삼아 불후의 명작 <신곡>의 모티브를 얻었고, 무수한 연애시도 썼다. 단테는 자신의 부인에 대해서는 자신의 시 속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결혼생활의 사랑은 단테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내 마음의 여주인"으로 표현한 베아트리체에 대해 낭만적이지만 플라토닉한 열정을 쏟아부었다. 또한 그녀의 죽음까지도 초월하여 정열적으로 사랑했다. 찬양받아 마땅한 여성, 천국과 같이 해맑은 베아트리체를 살아생전에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나, 사후에는 하늘에 올라가게 된 동정녀 마리아에 비견하기도 했다.
우리의 삶은 많은 부분이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채워진다. 실연의 아픔에 몸을 움츠리기도 하고 무겁고 두꺼운 슬픔이 지배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가치가 없고 까르르 껄껄 웃음으로만 채워지는 얇고 가벼운 행복의 걸림돌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여러 감정들은 겹겹이 쌓여 우리 삶을 단단하게 받쳐준다.
단테가 그랬듯 때로 예술가들은 세속의 차원을 초월해 더 높은 가치를 찾아 몰입한다. 베를리오즈는 예술가 중에서도 괴짜라 할 삶의 궤적을 그렸다. 의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낭만주의적인 연애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작곡가였다. 한 여인을 위해 삶의 모든 걸 걸기도 했던 그의 이런 말이 베를리오즈의 삶을 잘 함축하고 있다.
음악은 진실한 사랑만큼이나 나를 불행하게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음악과 평생을 함께 할 것이다.
- 베를리오즈
예술이 그렇듯이 절실히 추구한다고 모두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간의 일이다. 뜻밖의 일은 곳곳에서 우리 일상의 질서를 위협하고 때로는 운명을 흔들기도 한다. 뒤돌아 보아 그 순간에 충실했노라는 진실한 눈빛을 대한다면 그 삶에 누가 손가락질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