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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앞의 피아니시모
by
호림
Jun 29. 2022
초의 선사는 추사가 죽고 두 해 뒤에
망자의 묘 앞에서 말했다고 한다.
꽃이 고우면 비가 내리는 법이구나.
-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P.192
사망선고와도 같은 불치병을 안고 사는 사람은
어떤 심정일지 짐작만 하지만
절제된 산문으로 삶의 가치를 노래한 글이
울림을 줍니다.
철학자 김진영이 쓴 <아침의 피아노> 에는
피아노가 없지만, 피아노가 있습니다.
음악을 얘기하거나
그랜드 피아노 선율을 들려주지는 않았지만
피아노는
셈여림 기호 '피아니시모'에서 나왔기에
여리고 약하게 담담하게 쓴 글이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입니다.
책 가운데
청춘의 용광로가 뜨거웠던 시절
이심전심의 정서가 깃든
문구도 발견했습니다.
내 안에 텅 빈 곳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 텅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돌아다녔던 세월이 나의 인생이었다.
도서관을 헤매던 지식들,
애타게 찾아다녔던 사람들,
미친 듯이 자신에게 퍼부었던 히스테리들,
끝없이 함몰했던 막막한 꿈들......
그것들은 모두가 이 텅 빈 곳을 채워서
그 바람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몸부림들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도
그 텅 빈 곳을 채울 수 없는 걸까.
이제 남은 시간은 부족한데
과연 나는
그 텅 빈 곳의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P.144
어느 철학자의 산문이
초저녁을 쓸쓸하게 만들 때
비가 내렸고
친구는 비가 내려서
보고 싶다고 달려왔습니다.
술이 고프다고 했지만
실은 우정 한 모금에 대한
갈증이 있음을
짐작했습니다.
그런 친구가 있는 삶에 감사했습니다.
실없고 대책 없어 보이는 친구에게
다른 이유는 묻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사정을 아는지라
도시의 팍팍한 삶에
우정이라는 단비를 원할지도 모르는
이 낭만파의 마음을 헤아리기로 했습니다.
우정이 비처럼 마음을 적시는 날
내 삶의 총총한 걸음을 멈추고
계획된 일거리를 잠시 미뤄둔 채
하룻밤을 뚝 잘라내 친구와 보내는 일을
누가 실없는 일이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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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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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클래식' 을 찾고 그 울림과 떨림을 나누고자 한다. 몇 권의 책으로 대중들과 소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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