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이 깨운 아침

by 호림

아침은 <위풍당당 행진곡> 풍으로 활기차게 시작할 수도 있지만, 흐린 날에는 커피 한 잔과 차분한 음악으로 여는 것도 좋다. 오늘은 슈만이 나의 아침을 지배했다.


슈만의 삶은 거침없거나 위풍당당하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열어갔지만 울림을 남긴다. 박수갈채의 중심에 선 화려한 음악가가 아니었다. 팬들이 환호하는 무대에 서지 않았기에.


슈만의 삶은 상당 부분 궤도를 수정하며 달빛 속을 걷듯 조심스러운 행로였다. 클라라 슈만이라는 일생의 사랑을 만나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결혼까지 간 것 외에는.

대학 전공은 부모의 권유로 법학을 했지만, 적성과는 거리가 있어 아버지의 눈을 피해 다락방에서 음악과 씨름했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지만 손을 다쳐 접었다. 운명의 여인 피아니스트 클라라를 만났지만 전망 없는 음악가와의 혼사에 대한 처가의 반대는 극심했다. 결혼을 위해 엄청한 투쟁의 세월을 보내고 결국 둘은 사랑의 보금자리를 같이 했다. 아쉽게도 잉꼬부부의 연은 짧았다. 슈만은 건강이 받쳐주지 않아 40을 넘기지 못하고 클라라를 홀로 두고 떠났다.


차선과 차차선을 찾으며 운명의 내비게이션을 따라 충실히 살았던 슈만, 짧은 생에서 최고의 선택은 클라라와의 사랑일 것이다. 그가 창간한 잡지 <음악신보>를 통해 브람스를 발굴하고 극찬한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슈만, 클라라, 브람스, 한 시대를 풍미한 세명의 음악가는 삼각관계라는 세간의 오해를 받기도 했다. 클라라는 슈만 사후에도 친자식처럼 자신의 아이들을 둘봐 준 브람스였지만 선을 그었다. 클라는 자녀들에게 이런 편지를 남기며 브람스의 순수한 호의와 사랑을 구분했다.

아이들아 너희 아버지는 브람스 씨를 사랑했고, 그 재능을 높이 평가하셨단다. 아버지가 병으로 입원했을 때 그분은 슬픔을 함께 나누는 친구로 내 앞에 나타나 이 엄마의 아픔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었다.

......

내가 사랑한 것은 그의 젊음이 아니라 그의 고귀한 정신과 재능이었다. 부디 이런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의 아음다운 관계를 오해하는 이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 <당신을 위한 클래식>, 전영범, P. 206

20220506_172738.jpg

슈만의 삶이 짧았기에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 클라라와의 사랑, 평론가로서 브람스 같은 대단한 신인을 발굴하다시피 한 점도 그렇고. 무엇보다 <트로이 메라이> 같은 그의 삶처럼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우리를 풍부한 서정의 세계로 이끄는 명곡을 작곡했기에.


(31) 호로비츠 - 트로이메라이 - YouTube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