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주변 사람들은 이 화가가 책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반면에 피카소의 동시대 라이벌 격이었던 마티스는 대단한 다독가였다고 했다. 그런 선입견을 품어서 그런지 우리는 마티스의 그림에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세련미를 찾을 수 있고, 피카소의 작품에서는 거칠고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과 야성을 보는 것이 아닐까.
미술평론가들은 아마도 두 사람의 그림을 두고 이런저런 해석을 곁들일 재료로 독서와 지성을 연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의 완성도와 감동이 배움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법칙은 없다. 반 고흐도 바스키야도 미술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고 독학 스타일의 화가였다. 고흐는 밀레의 그림을 열심히 모작하는 연습을 많이 했고,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는 물론, 독일어, 불어, 영어로 전문서를 읽을 정도로 능통해 다양한 언어의 책을 쉼 없이 읽는 대단한 다독가였다.
피카소가 난독증이 있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의 주변에는 독서를 대신할 풍부한 지성파 친구들이 있었다. 시인 아폴리네르, 입체파를 같이 열다시피 한 화가 브라크도 있었다. 이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는 이 거장에게 지성의 샘을 부단히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또 피카소가 출근하다시피 한 화실에 책이 한 권도 없었으리라 단정하는 것도 무리일 것이다.
지성을 연마하는 상징이 된 독서는 이제 스마트폰과 웹 서핑에 자리를 내어줄 운명일까. 확실히 청소년들이 수험공부 외에 책을 진득하게 붙들고 있는 모습은 찾기 쉽지 않다. 책의 범주를 만화책이나 잡지를 빼고 벽돌 고전에 한정하면 더더욱 그렇다.
시대는 변했고 과거의 고루한 잣대로 마냥 책을 집어들라고 훈육하는 방식이 옳은지는 돌아볼 일이다. 그렇지만 깊은 사고로 세상을 해석하는 지혜는 상당 부분 책에서 나온다는 점을 많은 석학들은 인정하는 편이다.
종이책 신봉자이거나 활자 중독성이 있는 이는 책에 담긴 보물들을 건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과는 지성의 오솔길을 함께 걷기를 꺼릴 듯하다. 책에 대한 선호를 떠나서 2천 년 이상을 지속한 인류의 독서문화에 대해 그 무한한 긍정적 효용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