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을 정해서 기념이라도 해야 감사의 마음을 의무적으로 느끼기에 총총한 삶의 발걸음 잠시 멈추게 되는 5월입니다. 어린이날, 어버이의 날, 스승의 날, 감사할 대상을 생각하는 달입니다.
과거의 어머니들은 막내로 태어나면 말자, 끝순이 같은 이름을 가진 분들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아들이 아니라 천대받았던 시절엔 아예 이름도 없이 시집가서 누구의 엄마로만 살았던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 여러 남매를 키우던 시절에는 특별한 사연이 담긴 이름들이 많습니다. 동사무소 직원이 아무렇게나 지었는데 그것이 평생의 브랜드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읽은 책에서 엄마에 얽힌 사연을 소개합니다.
어머니의 호적이름은 '길씨'였습니다. 어린 시절, 학교에 부모님 이름을 적어내야 할 때가 되면 자식들은 "엄마는 왜 이름이 없어? 길씨가 뭐야?" 하며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내 이름은 길판임이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호적에 본인의 이름을 되찾는 것이 쉽지 않은 시절이라 그냥 '길씨'로 살았습니다. 7남매들도 그냥 지내며 병원에 진료를 받을 때도 "길씨님~!" 하는 이름으로 불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자녀들은 가슴에 응어리가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엄마의 이름을 그림으로 그려준 작가를 만나 "내 삶의 길가에 달빛으로 씨앗 심었더니 꽃 피고 또 길이 되었다"라는 글귀와 함께 엄마를 새롭게 만났습니다.
- 박석진, <당신의 이름이 꽃입니다>, p.212-214
자신의 이름을 잃고 누구의 엄마로 살아온 팍팍한 시절의 우리 엄마들께 카네이션 한송이를 바칩니다. 실상 어머니는 자식을 모신 것이었습니다. 공광규 시인의 어머니처럼.
나를 모셨던 어머니
공광규
늙은 어머니를 따라 늙어가는 나도 잘 익은 수박 한 통 들고 법성암 부처님께 절하러 간 적이 있다
납작 납작 절하는 어머니 모습이 부처님보다는 바닥을 더 잘 모시는 보살이었다
평생 땅을 모시고 산 습관이었으리라 절을 마치고 구경삼아 경내를 한 바퀴 도는데 법당 연등과 작은 부처님 앞에는 내 이름이 붙어 있고 절 마당 석탑 기단에도 내 이름이 깊게 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어머니가 다니며 시주하던 절인데 어머니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평생 나를 아름다운 연등으로 작은 부처님으로 높은 석탑으로 모시고 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