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엔 대단한 명성을 가진 서양철학의 거인들이나 공자 맹자의 어록은 그저 공허한 울림이었습니다.
살다 보니 어느새 경험이 쌓이고 먼지 묻은 고전에서 발견한 지혜가 제법 눈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부유했던 상인 제논은 배가 폭풍우에 파산하고 무일푼으로 아테네에 정착해 삶의 지혜를 논하는 스토아 철학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이후 학풍을 크라테스가 이어받아 지혜, 용기, 정의, 절제라는 이른바 4주덕을 삶의 모토로 삼고 후학들을 양성합니다.
살다 보면 정의의 편에 서서 자신의 이상을 위해 용감한 죽음을 택한 그리스 로마 전사들의 용기는 스크린에서나 보는 이야기가 되는 듯합니다. 어떤 경우는 사치스럽고 공허한 것으로 폐기될 가치는 아닌지 고개를 갸웃거릴 때도 있습니다.
얄팍한 처세술이 지혜로 둔갑하고 살아남는 강자의 정의만이 진실이 된다면 그 공동체의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시대 흐름을 떠나 보편적인 정의에 대한 감정을 부단히 찾아보는 지혜는 인류가 끝까지 끌고 가야 할 가치가 아닐까 합니다.
인생에는 정답, 비밀, 공짜가 없다고도 합니다. 얼핏 새옹지마의 행운으로 높은 관직에 올랐다가 그 높이만큼 추락하는 경우도 가끔 봅니다. 신데렐라로 비상하더라도 '절제'라는 기본기를 갖추지 못했을 때는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뢰나 우정 같은 가치는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힘듭니다.
얼마 전 카이스트에 300억 원을 기부한 30대의 자산가는 극구 익명처리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 기부자는 어린 나이에 자신에게 주어진 '부'가 두려웠다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상의 돈이 쌓이는 것에 대한 부담이 항상 있었고, 젊은 나이에 기부하게 돼 이제부터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익명의 기부자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웠습니다. 천천히 꾸준히 쌓은 지성이나 지혜는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지혜, 용기, 정의, 절제. 낡고 케케묵어 보였던 가치들에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잘 보이게 내 마음속 한켠에 액자로 걸어둡니다.